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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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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맛을 찾아 ⑫·끝 합천장 수제비

“합천서 수제비집 하면 그 할매집이지”

  • 기사입력 : 2008-09-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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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간장과 멸치로 끓여 낸 30년 노하우 담긴 얼큰한 맛

    양푼 가득 먹어도 또 당기네

    합천장, 수제비 맛 하나로 전국에서 ‘러브콜’을 받는 ‘할매’가 있다.

    30년째 장터에서 수제비를 만들어 온 ‘할매 수제비집’의 이추자(65) 할머니다.

    어떤 이는 큰 식당을 지어 주겠다며 대구로 가자고 했고, 마산에서 온 누군가는 거액을 줄테니 같이 가서 비법을 전수해 달라고 했단다. 끊임없는 요청에도 “내가 나고(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살란다”며 거절했다는 할머니. 흔하디 흔한 수제비에 어떤 ‘요술’을 부렸기에 이토록 난리일까.

    소문 무성한 할매표 수제비 맛을 보기 위해 합천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반갑다. 비오는 날엔 뭐니 뭐니 해도 수제비가 제격 아닌가.

    “시장통에서 아무한테나 ‘할매 수제비’를 물어 보면 다 안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수제비집은 한 번에 물어 찾을 수 있었다.

    식당은 생각보다 좁고 낡았다. 엉덩이를 밀착해 따닥따닥 붙어 앉아야 10명 겨우 앉을 수 있을 듯한 내부는 3평 남짓, 요리는 가게 문 앞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멸치 육수를 끓이고, 반죽해 둔 밀가루를 손으로 뜯어 넣고, 감자와 땡초, 부추를 넣는다. 이게 끝이다. 이게 뭐람, 녹차수제비. 해물수제비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없어도 너무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이라곤 반죽을 떼 넣는 할머니의 손놀림 정도다. 기계보다(?) 빠른 속도로 반죽을 버무리며 뜯어내는 손놀림은 가히 예술이다. 손으로 접는다는 뜻, ‘수(手)접이’가 어원인 수제비는 손맛을 타야만 제맛이 난다는데, 할머니의 수제비 맛도 과연 손놀림만큼 뛰어날까.

    모양새야 어쨌든, 맛을 봐야 제대로 그 소문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두 그릇을 주문했는데 들고 오는 수제비 양은 3인분 수준이다. 어떻게 다 먹나 싶지만, 한 번 입을 대기 시작하면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얼큰한 국물 맛은 해장국이 따로 없다. 손으로 빚어낸 수제비는 물찍하면서도 쫄깃쫄깃하다. 수제비가 목으로 넘어가기가 무섭게 숟가락이 그릇으로 돌진한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빈 그릇이다.

    손님 안정열(43·합천군)씨는 “할머니가 만드는 이 수제비가 완전 옛날식 수제비”라며 “수제비야 여기저기서 많이 먹어 봤지만, 담백하고 솔직한 이 집 수제비 맛은 다른 곳과 차원이 다르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맛의 비결을 묻자 “별 거 없다”며 손사래 치던 할머니는 “조선간장과 멸치를 좋은 걸 써야 한다”는 다소 뻔한(?) 대답을 들려준다. 비단 재료만으로 이 맛이 나겠는가. 매일 아침 정성으로 버무리는 반죽과, 30년 노하우의 손맛, 그리고 푸짐한 인심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맛이리라.

    할머니는 “300원 할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 잘될 때는 하루에 밀가루 20kg을 비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터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수제비 장사도 예전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 게다가 장터 곳곳에 새로 생긴 수제비집들이 배달까지 하면서, 혼자 식당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더욱 힘들어졌다.

    “일흔까지만 하고 손 놔야지, 이제 어깨도 아프고 손님도 줄어 가고 힘들다”는 할머니, 배고픔에 나른해진 아이들을 위해 밀가루를 주무르던 옛 시절 어머니의 서러움이 문득 떠오른다.

    누군가가 수제비는 ‘가난의 상징’이라고 했고, 수제비는 ‘맛이 아닌 추억으로 먹는 거’라고 했다. 장터에서 먹는 수제비에 배보다 가슴이 더 따뜻하게 불러 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까.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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