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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3)연출가 이윤택의 연극 ‘오구 - 죽음의 형식’

눈물·웃음 섞인 상갓집서 ‘한국적인 연극’ 힌트 얻어
1989년 초연 후 19년간 100만명 이상 관객몰이

  • 기사입력 : 2008-12-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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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미정씨가 노모 역을 맡은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



    강부자씨가 노모 역을 맡은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



    연출가 이윤택씨가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래, 사람마다 한번씩 가는 길, 그것도 잘살고 잘 먹고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살다 가면 덜 설타 할긴데,” “ 떡 팔아 두 놈 공부시켜 놓고, 늘그막에 집 한칸 장만해서 인자 조까 살만한데, 자슥을 두고 갈라카이 눈물이 앞을 가려,어느 시절에 다시 올꼬”- ‘오구’ 노모의 대사 중-

    1989년 6월 극단 쎄실 공연(연출 채윤일)으로 서울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초연돼 이듬해 6월 연희단거리패 연극(이윤택 작·연출)으로 재연된 ‘오구-죽음의 형식’.

    19년 동안 100만명 이상의 많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아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오구-죽음의 형식’의 연출가 이윤택(56).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연출가이며, 1986년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하고 부산의 가마골 소극장을 거점으로 연극활동을 시작해 극작, 연출, 연기훈련, 무대술 전반에 걸친 작업을 통해 1990년대 한국 실험 연극의 기수로 등장한 ‘문화게릴라’ 이윤택씨를 밀양연극촌에서 만났다.

    그에게 있어 ‘오구-죽음의 형식’은 자신의 인생관을 바꾼 작품, 서구적인 사고와 서구적인 문학관·예술관을 한 방에 역전시킨 작품이라고 말한다.

    해학과 풍자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오구-죽음의 형식’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그는 “친구의 상갓집에서 밤늦은 시간 맏상주가 화투를 치다 문상객이 오면 ‘에고~ 에고~’ 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화투를 치는 모습을 보고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이것이 연극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상갓집 분위기를 유심히 살폈죠. 삼촌·사촌들이 ‘땡깡’을 치고, 아무렇지 않게 성적인 농을 지껄이고, 한마디로 완전 개판이었어요. 그런데 모든 것이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아있는 상주들이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모든 행위들이 이루어진다고 믿게 된 거죠. 여기서 힌트를 얻었어요”라며 오구의 작품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결정적으로 ‘오구- 죽음의 형식’은 그의 ‘부모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된다.

    이씨는 “1993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우리시대의 연극’ 공연을 앞두고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 염장이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신수 훤하다. 꽃신 신고 극락 갑시다’라며 대화하는 모습이 아주 충격적이었다”며 그래서 연극 오구의 염습 장면을 수정했다고 한다.

    그는 또 “2004년 어머님의 장례를 밀양연극촌에서 전통장례로 치르게 됐는데 마침 축제(밀양여름예술공연축제) 개막 하루 전날이라 배우들이 ‘오구’의 굿판을 그대로 재현해 어머님의 죽음이 정말 축복받은 장면으로 갔다”며 “그런 의미에서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은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하며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라 설명한다.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은 죽은 자를 위한 굿이다. 오구굿은 죽은 사람이 생전에 풀지 못한 소원이나 원한을 풀어 주고 죄업을 씻어 극락천도를 기원하는 일종의 무속이다.

    연극은 일상으로부터 출발해 어머니(강부자 또는 남미정)가 꿈속에서 염라대왕과 죽은 남편을 만나는 등 죽음을 예고하는 꿈을 꾸고 산오구굿을 열어달라고 한다. 굿판이 열리면 관객들은 실제 굿판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굿판이 끝나면 어머니는 ‘나 갈란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어머니의 초상을 치르면서 형제들간 재산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죽은 어머니가 관에서 나와 이들 형제를 꾸짖고 화해하는 것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19년 동안의 오구 공연사에서 유일하게 ‘오구’가 공연되지 않은 해는 1995년.

    그는 “94년까지 ‘오구’는 실험극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한계가 온 거죠. 그래서 단원들이 모여 대중성 있는 분을 모셔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가장 적합한 배우로 강부자씨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찾아가 출연해 달라고 부탁했었죠”라고 한다.

    다행히 강씨는 이윤택씨의 작품 ‘문제적 인간 연산’을 보고 작품이 너무 좋아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터라 두말 않고 출연을 허락했다.

    이후 오구는 96년 정동극장에서 다시 공연이 시작되었고, 노모 역할이 남미정씨에서 강부자씨로 교체되면서 ‘오구’는 대중극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씨는 오구에서 더블로 출연하는 남미정씨가 노모 역할을 맡았을 때와 강부자 선생이 맡았을 때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남미정씨가 노모 역을 맡았을 때는 관객들이 공연 내내 웃어요. 하지만 강 선생이 노모 역을 맡았을 때는 관객들 모두가 울어요. 공연장이 눈물바다를 이루죠”라고 말하는 이씨.

    그는 “우리 연극의 특성은 웃기고 울리는 것’이라며 “너무 웃기기만 하지 말고 울기도 해야 한다”며 “울어야 정화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에는 남미정씨가 무대에서 웃기고 울리는 연극을 공연할 예정이란다.

    연극평론가 김방옥씨는 “연극 ‘오구’는 굿과 장례의식이 단지 ‘표현’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서민들이 받아들여온 삶과 죽음의 느낌과 놀이성, 일상성의 다양한 미적 차원들이 엄청난 활력으로 요동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화제작 ‘오구-죽음의 형식’도 아픔은 있었다. 2003년 11월 영화로 제작된 ‘오구-죽음의 형식’은 개봉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리는 시련을 겪었다.

    이씨는 “영화는 철저한 개인적인 것이었어요. 연극은 혼자 공연장을 찾아도 관객들과 함께 어울리며 이웃이 되는데, 영화는 여러 명이 와도 혼자가 되더라고요. 그걸 미처 몰랐어요”라며 “역시 오구는 연극으로 해야 제맛이에요”라며 아픈 기억을 회상했다.

    그는 요즘 특별한 작업 없이 단원들과 함께 배우의 화술과 움직임 등을 연구하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특히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일이 있다면 시를 쓰는 일이다. 그 결과로 내년 봄 도내에서 발간되는 문예지 ‘서정과 현실’에 15편의 시가 실린다.

    내년에는 부산 연산동으로 옮겨 가는 가마골소극장에서 ‘소극장용 오구’를 다시 열고 김해·창원 등으로 공연 활동을 넓혀 나갈 계획이란다.

    ☆연출가 이윤택씨는= 1952년 부산 출생. 경남고를 거쳐 1972년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에 입학했다. 배우 하재영, 독고영재, 김일우 등이 동기로 유치진, 오태석, 윤대성 교수 등으로부터 연극을 배웠다. 1974년 몰리에르의 희극 ‘엉터리 의사 스가나렐’이 실패한 후 군에 자원입대했으나 의가사 제대, 대학 중퇴생으로 도서 외판원, 우체국 서기보, 한일합섬 염색가공 기사 등을 전전했으며, 밀양에서 1년간 한국전력 직원으로 있을 당시 시 ‘도깨비 불’을 써 등단했고 같은 해 7월 부산일보에 입사해 7년간 편집부 기자 생활을 했다.

    1986년 신문사를 그만두고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창단, 부산 가마골 소극장을 중심으로 ‘산씻김’, ‘시민K’ 등 뚜렷한 사회적 메시지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올렸다.

    1988년 서울로 올라가 ‘어머니’, ‘오구-죽음의 형식’, ‘느낌, 극락 같은’ 등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 이윤택 바람을 일으켰다.

    희곡뿐만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 ‘우리는 제네바로 간다’, TV드라마 ‘행복어 사전’ 집필과 ‘문제적 인간 연산’, ‘어머니’를 영화로 만들었으며 시집과 평론집, 에세이집을 펴내는 등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했다. 지난해 ‘화성에서 꿈꾸다’로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을 받았다.

    1999년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밀양에서 연극촌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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