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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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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5) 창작오페라 ‘논개’ 작곡 최천희씨

우리 지역 이야기, 우리 음악으로 노래하고 싶었죠
준비 기간만 2년 거쳐 2005년 10월 초연

  • 기사입력 : 2009-0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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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 논개


    오페라 논개




    최천희씨가 마산 평화동 자택에서 작곡하고 있다.



    2003년 11월 진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였던 최천희 작곡가는 경남오페라단 정찬희 단장으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았다.

     ‘10년 넘게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 왔으니 창작오페라 한 편 정도는 제작해야겠다는 소명감에서 시작했죠.’(정찬희 단장)

    최씨는 그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 지역에 아랑, 곽재우, 사명대사 등 소재도 많아 오래 전부터 오페라 작곡을 한번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99년 진주시향을 맡으면서 진주 지역의 캐릭터인 ‘논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의를 받았죠. 그간 머릿속으로 구상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고 우리 지역에서 창작오페라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지 하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경남오페라단은 ‘논개’를 2004년 제11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무대에 올릴 계획이었으나 이듬해 경남오페라단의 제12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2005년 10월 28~29일과 11월 1일 창원, 진주에서 세 차례 공연했다.

    통상적으로 오페라 한 편을 무대에 올릴 때 준비기간은 1년 정도면 충분한데 최씨가 2년간 준비기간을 달라고 정찬희 단장에게 요청한 것.

    “당시 서울, 대구 등에서 창작오페라 붐이 일어 관람해 보니 준비기간이 짧아 작품이 형편 없었어요. 악보가 늦게 나와 성악가들이 가사를 못 외우고 무대에 서는 것을 보고 실망했죠. 경남 음악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봉희씨가 2004년 2월 대본을 완성하자 최씨는 곧바로 작곡을 시작했다. 성악과 피아노본 완성, 관현악으로 편곡, 작곡 완료, 보완 작업 등 오랜 기간 고단한 작업을 거쳐 최종 작품이 완성됐다.

    이 와중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논개가 기생이었다는 진주시와 논개가 장수 사람으로 평민이라는 전북 장수군의 주장이 엇갈려 역사에 누를 끼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논개 관련 사료를 수집, 공부한 뒤 최종적으로 진주시의 주장에 따르기로 하고 대본을 수정하기도 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한 역사적 사실성에 무게를 두고 싶었어요. 극적인 요소를 소홀히 하지는 않으면서도 논픽션에 가까운 오페라의 특성을 살려내려고 노력했죠. 논개의 행적을 따라 현장을 여러 차례 가봤고 문헌 등 기존의 자료들을 꼼꼼히 검토했습니다. 대본 작가에게도 이러한 점을 주문했고 작가도 이를 충분히 담아냈습니다.”

    2005년 5월 출연진이 확정됐고 연습이 시작됐다. 논개 역에는 뮤지컬 ‘명성황후’ 주연으로 열연했으며 뉴욕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김원정과 부산 동의대 최훈녀 교수가 더블 캐스팅됐다. 논개가 사모하는 연인으로 나오는 황진 장군 역에는 테너 손정희와 창원대 김동순 교수가 맡았다.

    ‘서울올림픽 한강페스티벌’, ‘통일음악회’등 수십 편의 대형 문화이벤트를 연출한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장수동씨가 연출했다. 진주시립교향악단이 최씨의 지휘로 연주했으며 창원시립합창단과 창원시립무용단이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천년고도의 역사를 간직한 충절과 예술의 도시 진주를 배경으로 한 경남 최초의 창작오페라 ‘논개’가 탄생됐다.

    창작오페라 논개는 총 3막 5장으로 구성되었다. 1593년 6월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10만여 대군을 이끌고 왜가 다시 쳐들어와 조선 3500여명의 군사와 6만여명의 주민이 사투를 벌였지만 11일간의 전투 끝에 패하고 말았던 2차 진주성 전투가 시대적 배경이다.

    최씨는 이 작품에서 논개의 의로움과 용기, 희생의 정신을 부각시켰다. 살신성인으로 지칭되는 ‘논개의 정신’이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재로 이어지고 또 미래에도 계속되는 미래지향적 가치임을 알리고 있다.

    작곡 측면에서는 한국 전통음악적 요소와 서양음악적 요소를 고루 가미했다. 전통음악에서 민속악과 아악을 삽입했고 서양음악에서는 조성과 비조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하면서 난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모든 창작 작업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죠.”

    민족적인 오페라에 걸맞게 우리의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국악기와 전통줄타기, 민요, 판소리들을 차용했으며 전승 축하연에서 사실적 묘사를 위해 ‘진주검무’를 활용했다. 진주민란 때 불려져 전국적으로 퍼진 진주민요 ‘다리뽑기 노래’는 서곡에서부터 전곡에 걸쳐 나타나는 중요한 모티프가 됐다.


    오페라 논개


    ‘논개’는 지역 예술인과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논개는 짜임새 있는 극적 구성과 다양성 있는 요소들의 긴밀한 결합으로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였다. 작곡가는 국악과 양악의 경계가 없는 비빔밥을 만들었다. 스케일도 크고 그러면서도 매우 섬세한 표정과 성악적 멜로디 라인이 풍부하게 살아난 어법을 구사했다. 국악, 랩, 시조창, 가요풍 등 다양한 양념들에 의해 관객은 어느새 극이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관계가 잘 정리돼 노래를 방해하는 요소가 억제되면서도 관현악의 시원함을 통해 무대의 크기를 잘 조절하고 긴장과 이완, 그 속도의 흐름을 분명하게 읽고 치밀함이 엿보였다.’(탁계석 음악평론가)

    ‘작곡가는 이 오페라의 중심을 잡기 위하여 서곡과 간주곡에 타악기와 금관악기를 통한 화려한 팡파르 같은 분위기를 두었다. 전체는 우리 전통풍의 음악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때로는 현대음향을 마음껏 활용하기도 했다. 작곡자 자신이 곧 지휘자이기에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균형과 속도 및 강약 조절을 적절히 잘 살려갔다. 몇 가지만 수정 보완한다면 전국 어디에 내놔도 별 손색이 없을 것이다.’(임주섭 영남대 작곡과 교수)

    ‘오페라 ‘논개’를 통해 사물놀이, 진주검무, 살풀이 등 우리의 춤사위와 우리의 가락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운지, 얼마나 신명나고 즐거운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며 양악과 국악이 만나 더욱 멋진 장르의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감히 국민오페라 ‘논개’를 꿈꾸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한다.’(정찬희 경남오페라단 단장)

    작품이 성공적으로 공연되자 지역 음악계는 흥분했다. 제작·출연진 사이에서 창작오페라 정도가 아니라 국민오페라가 돼야 된다는 말도 나왔다. 첫날 공연이 끝난 후 정 단장은 곧장 서울 공연을 갖겠다며 공연장을 섭외했지만 대관이 여의치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일본, 북한 등에서의 공연이 추진됐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산됐다.

    이후 ‘논개’는 몇 차례 더 무대에 올려졌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2006 신년음악회(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하이라이트를 선보였으며 광복 61주년 경축 국립진주박물관 야외음악회에서는 갈라콘서트 형식으로 공연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종일 경남예총 회장의 연출로 드라마틱한 연극적 요소가 가미돼 마산3·15아트센터에서 재공연되기도 했다.

    경남 음악사에서 ‘논개’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최씨는 머뭇거림 없이 경남 최초의 창작오페라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유입된 것이 100년 즈음한 시점에 경남에서 최초로 창작오페라가 제작되고 공연됐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우리 고유의 선율을 오페라에 접목시켜 오페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 대본과 작곡을 우리 지역 예술인이 맡았고 진주시향, 창원시립합창단, 창원시립무용단 등 지역의 예술단체가 함께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남예술인들의 열정과 노력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못하고 중앙 무대에 서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창고에 들어 있는 ‘논개’가 수정, 보완작업을 거쳐 비중 있는 무대에 올려져 경남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브랜드로 재탄생되기를 기대해본다.


    최천희씨가 피아노를 치며 곡을 구상하고 있다.


    ▲최천희씨는= 1974년 마산상고 재학 시절 밴드부에 입단하면서 음악에 입문했다. 77년 경남대 음악교육과에서 작곡을 전공했으며, 85년 계명대 대학원 작곡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87년 졸업과 동시에 동기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그는 한국사람으로서 음악을 하려면 국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년간 독학해 영남대 대학원 국악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잠시 강사생활을 하다가 유럽으로 건너가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음악원 대학원 작곡과와 러시아 모스크바 그네신음악원 지휘과를 졸업했다.

    마산시립교향악단 창단 멤버로 1984년부터 7년간 타악기를 연주했으며 이 기간 동안 작곡활동도 병행했다.

    ‘몽중음시’ ‘대취타’ 등 관현악곡이 교향악축제에서 연주된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관악제, 제주국제관악제, 통영현대음악제, 대구시향, 마산시향, 창원시향, 진주시향, 부산시향, 춘천시향, 카자흐스탄국립교향악단, 강남심포니, 키엘체쳄버, 마산쳄버, 안동대관현악단, 삼육대관현악단, 마산관악단, 진주관악단, 부산관악단, 나고야예대관악단 연주회 등에서 그가 작곡한 관현악곡과 관악합주곡이 연주됐다.

    또 합포만현대음악제, 영남국제현대음악제, 동아시아국제현대음악제, 대구국제현대음악제, 비아위스톡현대음악제, 아르스안티콰 노바현대음악제, 자카르타현대음악제, 아이레후 현악4중주단, 나고야필 현악4중주단(일본), 누안사클라시카4중주단(인도네시아), 엘스너 현악4중주단, 발라섹 현악4중주단(폴란드), 바르샤바 색소폰4중주단, 경남챔버소사이어티, 마산시립합창단, 창원시립합창단 연주회 등에서 그의 실내악곡과 합창곡이 선보였다.

    오페라 작품으로는 ‘논개’와 김호준, 이형근, 한정훈씨 등과 공동 작곡한 ‘소나기’가 있다.

    마산관악합주단, 마산체임버오케스트라, 진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경남음악협회 회장, 앙상블 꼬니-니꼬 지휘자, 마산체임버오페라단 대표를 맡고 있다.

    글=양영석기자 yys@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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