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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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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허즉실 실즉허 지략(虛則實 實則虛)- 황우성(GM대우 창원사업본부장·전무)

  • 기사입력 : 2009-03-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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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의 전령사인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어느덧 회사 본관 앞 백목련도 기품 있는 자태로 꽃망울들을 터뜨리고 있음에 완연한 봄이 왔음을 느낀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의 엄습으로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끝도 없는 터널 속에 갇힌 것만 같아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의 어둠 속에서 괜스레 움츠러들며 오그라드는 심정이다. 국민들에게 언제쯤이면 어깨를 쫙 펼 수 있는 희망의 찬가를 들어볼 수 있을까?

    80년 만에 찾아온 대공황을 능가하는 지구촌의 혼란 상황에서도 우린 반짝 웃음을 웃었고, 이 암흑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한줄기의 빛을 보게 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WBC전 1라운드 마지막 순위 결정전이었던 한일전이다.

    마지막 게임 이틀 전 우리는 일본에게 14대 2 콜드게임패라는 한일전 최초의 굴욕적 사건을 겪은 반면, 일본 열도는 오만의 열기를 부추기는 기사들로 한껏 고무되었고, 우리는 좌절의 짧은 침묵을 가졌었다. 그리곤 중국을 제물 삼아 전날의 치욕을 분풀이 하고, 3월 9일 월요일 밤 도쿄돔의 마지막 일전을 절치부심하며 김인식 감독을 중심으로 김성한, 양상문, 이순철 코치진들은 면밀한 계획을 준비했다. 3가지의 비책으로 준비를 마치고 월요일 출전장에 나갔다.

    첫째는 이치로의 기를 철저히 꺾으면 일본전단은 스스로 위축될 것이며, 둘째는 일본의 면도날 같은 투수들 틈새를 노려 몸쪽 공을 공략하며, 셋째는 일본이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해온 투수는 빼고 사전 대비가 없는 투수로 빠른 공, 힘 있는 공을 뿌리는 투수로 혼란시키는 전략이었다.

    이날 우리 투수는 선발로 봉중근, 정현욱, 류현진, 임창용의 순으로 등판했는데, 봉중근 투수는 이치로를 3번이나 땅볼로 셧아웃시키며, 5와 1/3이닝 동안 여우처럼 일본 타자들을 철저히 농락했고, 더구나 1회말 마운드에 서자마자 타임을 부르고 미국 심판에게 다가가 플래시 빛이 투구에 지장 있다며 자제 촉구를 했고, 주심은 웃으며 전광판에 자제 안내문을 내보내며 이치로와의 신경전을 유도하며 결국 첫 타자의 기를 꺾어놓는 우위를 점했다.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다. 그리고 일본을 한 점 차로 1:0 완승을 하며 도쿄돔을 잠재웠다.

    여기에서 우린 어리둥절한 대목이 있다. 1차전서 콜드게임으로 패한 대한민국 야구 대표단이 이틀 후 2차전에서 일본대표의 화력을 잠재우고 1:0의 짜릿한 완승을 했는데 누구의 실력이 위고, 한국야구의 진짜 수준은 어느 것이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력과 제갈공명 같은 승리였다고 본다. 일본의 전력을 충분히 탐색해서 그들의 허점과 장점을 분석한 1차전은 승패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게임이었고, 마지막 순위 결정전이 2라운드 상대를 쿠바냐 멕시코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점을 우리 감독 코치진들이 염두에 둔 작전이었다.

    명불허전의 역전노장 김인식 감독의 철저한 ‘허즉실 실즉허(虛則實 實則虛)’의 대일본 전략의 승리였기에 우린 여기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냉정한 판단과 철저한 분석에 따른 가능한 목표의 설정, 그리고 순간의 방심을 역전의 빌미로 예리하게 파고드는 날카로운 전략과 전술 운용, 즉 실천력이며 팀원들이 이 뜻을 잘 따르는 팀워크의 발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 지도자의 몫임을 알았다.

    긴 침묵과 암울한 흑암의 터널처럼 느껴지는 현재 국내의 경제환경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속앓이 하고, 좌절과 포기할 수 있는 이 즈음에 대통령 이하 각료들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각 분야의 리더십들이 하나로 뭉쳐 꼼꼼한 전략과 전술로 이 위기를 구해내는 한줄기 빛을 보여주기를 목 빼고 기다려 본다. 위기 때 더 강한 한민족이었음을 우리의 역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알고 있기에, 그 기대 또한 아주 간절한 때이다. 그리고 위대한 역전극을 펼쳐낼 내일을 기대하노라면 찡그린 얼굴도 다소는 누그러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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