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 (금)
전체메뉴

폐위된 왕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거제 둔덕면 폐왕성지
산성 올라서면 거림마을 들녘·통영 한산만·고성 자란만 발아래 펼쳐져

  • 기사입력 : 2009-04-09 00:00:00
  •   

  • 거제 둔덕면 우두봉 정상의 폐왕성지에서 바라본 거림마을 들녘. 저 멀리 가라산과 노자산의 봉우리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폐왕성지


    산방산 자락에 조성된 비원에 벚꽃과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 있다.


    폐왕성지

    하얀 꽃바람이 분다. 도심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벚꽃잎들이 하나둘 바람에 흩날린다.

    완연한 봄이다. 여기저기 봄소식을 전하는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봄바람에 몸을 실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꿀떡’ 같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인근 산성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산등성이를 따라 절묘하게 이어져 있는 산성을 걸으며 그 역사와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다.

    쉬엄쉬엄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삼림욕은 물론 옛길을 밟는 기쁨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거제 둔덕면의 ‘폐왕성지’(도기념물 제11호).

    고려 의종 24년(1170) 상장군 정중부 등 무신이 난을 일으켜 고려 18대 의종이 폐위되어 거제도로 추방돼 3년간 머물렀다는 ‘폐왕성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봄바람을 따라 창원에서 길을 나선 지 1시간30여분 만에 이른 거제의 관문 ‘거제대교’. ‘견내량’을 사이에 두고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가 마주 앉아 있다. 햇살에 반사된 바다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다시 지방도 1018호를 따라 20여분을 달리니 목적지인 둔덕면 거림마을 입구에 이른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방하마을에는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으며 각종 야생화와 희귀식물이 어우러진 수목의 천국 ‘산방산 비원’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일단 ‘폐왕성지’를 먼저 둘러본 후 다시 찾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우두봉 줄기 야산(해발 326m)의 남-북축을 중심으로 평면 타원형의 테뫼식 산성인 ‘폐왕성지’는 성의 둘레가 약 550m, 높이는 5m에 이르는 고려후기 양식의 산성이다.

    ‘폐왕성지’는 거림마을에서 언덕을 따라가다 ‘무의사’ 절 입구에서 갈라진 오른쪽 산길을 따라 2.3km 지점 우두봉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봄꽃들과 벗 되어 오르는 산길이 흥겹기만 하다. 산새들의 울음소리는 멜로디가 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은 어느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 준다.

    40여분 만에 도착한 ‘폐왕성지’는 천년의 세월에도 산성의 형태를 온전하게 보전하고 있어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부 구간에는 무너진 성벽의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널브러진 바위를 밟고 성벽을 오르니 ‘폐왕성지’ 아래 펼쳐진 거림마을 들녘과 통영 한산만, 고성 자란만의 풍광이 가히 장관이다. 이곳이 군사상 전략적 요충지임을 금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방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눈 아래 널따랗게 펼쳐진 거림마을 들녘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저 멀리 들녘에서는 농부들이 농기구로 논갈이를 하며 봄 농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저 멀리 가라산, 노자산 등 거제의 명산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뻗어 있다.

    거림지역은 고려의 관아터가 있었던 곳으로 아랫마을에는 둔전을 두어 농사를 짓도록 하였고 윗마을에는 말을 기르는 마장과 그 목장 감독자인 시목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서쪽으로 몇 발자국 발걸음을 옮기니 거제대교와 견내량이 눈앞에 펼쳐진다. 견내량은 거제도와 통영만 사이의 긴 수로로, 길이는 약 4km이며 폭이 600m를 넘지 않는 좁은 해협으로 암초가 많고 물살이 거세 예부터 해난 사고가 잦았던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충무공은 견내량의 수로가 좁고 조선수군이 넓게 포진해 포격전을 벌일 수 없어 전라좌수군 5~6척의 판옥선으로 왜선을 견내량으로 유인한 뒤 한산만 앞바다에서 거북선과 학익진으로 일본 수군을 섬멸했는데 이 전투가 바로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한산도 대첩’이다.

    성벽 바위에 걸터앉아 견내량과 한산만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거북선을 거느리고 일본 수군을 섬멸하는 이 충무공의 함성이 저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다.

    폐왕성지 곳곳에 누각을 세웠던 터와 천지못이 있으며, 북단에는 기우제와 산신제를 지내던 제단을 찾아볼 수 있다.

    황사 탓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1시간 남짓 올라 만난 풍경 치고는 아주 훌륭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찾은 청마 유치환 선생의 기념관과 생가.

    지난해 건립된 청마문학관은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인 청마 유치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기념관 앞마당에는 청마 선생의 청동상과 그의 시들이 새겨진 시비들이 세워져 있고 인근에는 1908년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한 아담하고 포근한 청마의 초가집이 자리 잡고 있다.

    청마는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일생 고뇌하였고 그의 시는 의지와 소망의 표현을 담아 암울한 시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주었다. 하지만 ‘찾은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일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큰 바위산 세 개가 하나의 산봉우리를 이룬 산방산을 배경으로 각종 야생화와 희귀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수목들의 천국 ‘비원’을 찾았다.

    산방산 자락 9만9174㎡에 조성된 산방산 비원은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과 인간의 솜씨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걸작품이다.

    ‘산방산 비원=꽃동산’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다양한 꽃들이 비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노랗게 피어난 수국, 눈처럼 하얀 설유화, 루드베키아, 할미꽃, 꽃창포, 큰꽃으아리, 매발톱 등 이름조차 생소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온통 꽃밭을 이루고 있어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이 꽃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산방산 비원은 거제가 고향인 김덕훈 원장이 100억원을 투자해 조성한 식물원이다.

    비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바라본 한산도 앞바다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비원을 끼고 산방산 8부 능선에 올라 한산도와 욕지도, 비진도 등 남해 다도해의 절경을 바라보는 풍광은 더 아름답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