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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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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11) 송성호 김해 가야문화예술관 이사장

“자연에서 신나게 놀며 배우는 곳, 그게 문화공간”

  • 기사입력 : 2009-08-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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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성호 김해 가야문화예술관 이사장이 예술관을 찾은 어린이들과 스프링클러 앞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야생화가 지천에 깔려 있다. 즐겁게 뛰어놀면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 좋다. 미술품을 감상하고, 전통 문화·예술을 배울 수 있어 늘 사람이 붐빈다.

    무시로 찾아와 추억 가득 싣고 무시로 떠나는 곳, 그곳이 바로 김해시 진례면 신월리에 위치한 ‘가야문화예술관’이다.

    가야문화예술관 정문을 들어서면 흙을 밟아야 한다. 널따란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크게 소리 지르고 달리고 싶어진다. 어찌 보면 영화 세트장이고, 어떻게 보면 미술관이고, 또 다르게 보면 식물원 같은 곳이기에, 그곳에 가면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가족, 연인, 회사 동료, 동아리 회원 등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서, 의미 있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주인공은 가야문화예술관 송성호(60) 이사장.

    기자가 취재 간 그날도 송 이사장은 예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쉴 자리 제공을 위해 그늘막 공사에 여념이 없었다.

    망치와 드릴을 들고 쇳덩이 구조물과 씨름하는 그에게서 땀 냄새가 진동했다. 이마에 깊게 팬 주름 몇 가닥에서 ‘평탄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구나’ 하는 짠맛을 느끼지만, 온화한 눈빛과 입가에 흐르는 미소에서 ‘그래도 행복한 삶을 가꾸고 있구나’ 하는 단맛을 느끼게 한다.

    ◆잘나가던 사장이 갑자기 던진 사표

    송성호 이사장은 49세 때인 1998년 10월 폐교로 남아 있던 김해 옛 신월초등학교를 임대해 이듬해 4억5000만원의 사재를 들여 공사를 시작, 2000년 5월에 가야문화예술관을 개관하고, 이를 김해시에 기부채납했다.

    송 이사장은 예술관 쪽으로 인생의 여정을 옮기기 전에는 아주 잘 나가는 판매점 사장이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김해 진례면 일대에서 오토바이 판매상을 20여년 하면서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 잘나가는 오토바이 판매점 사장은 오토바이 수요 급증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돈만 생기면 미친 듯이 골동품, 그림, 도자기를 모으는 취미가 생겨 버렸다.

    송 이사장은 사흘들이 마산 부산 서울 진도 목포 광주 순천 여수 인천 등 전국을 돌며 유명 전시회나 골동품상을 찾아갔다. 전국의 웬만한 예술품 마니아들이나, 한국화 문인화 서양화 도예가 등 각 분야 대가(大家)들이 그를 먼저 알아볼 정도였으니 그의 광적인 미술품 사랑은 ‘전국구’였다.

    돈 10만원 생기면 밥은 못 먹어도 미술품은 한 점이라도 더 구입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한 점 한 점 모은 게 거실에 꽉 차고, 방마다 가득하고, 이제는 장롱까지 비워야 했다.

    “20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모았는데, 어느 날 이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나 혼자 보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나가던 사장에게 또 다른 욕심이 생긴 것이다. ‘자랑의 욕심’. 수집의 욕심을 넘어 이젠 자랑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는 불혹의 마지막 해에 용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진례면의 폐교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꼭 돈을 벌어야 성공인가”

    이순(耳順)을 넘긴 그에게 10년 가까이 예술관을 운영하면서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고 물으면 그는 할 말이 없다고 한다. 미친 듯이 작품만 모았고, 그 작품을 농촌지역 호젓한 곳에서 보여주고 싶은 생각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관 설립 비용에 사재 4억5000만원을 들였는데, 당시 대출금 1억5000만원은 아직 갚지 못하고 있다. 예술관 개관 10년이 다가오지만 예술관이 비영리 업체이기 때문에 수익이 생기지 않아 그렇단다. 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그럼 왜 시작했나요.

    -인생 성공의 기준을 명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꼭 돈이 성공의 척도는 아닌 것 같다. 돈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돈을 벌지 못한 변명은 아닌가요.

    -누군가 나를 찾아오면 막연히 좋다. 차도 한잔 대접하고 얘기도 나누고, 그게 삶이 아닌가. 저기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들을 보라. 저 천진난만한 모습을 나는 매일 본다.

    △오토바이 판매점 사장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글쎄, 친구들 만나서 고스톱 치고 맛있는 고기 많이 먹고 풍성하게 지내고 있겠지.

    △친구들처럼 못하는 게 후회되지 않나요.

    -후회한 적 정말 없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내가 제일 건강할걸. 잘 자란 우리 딸 3명이 지금 엄마 아빠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데, 더 많이는 필요 없어.

    ◆“편하게 와서 편하게 놀면 고맙지”

    ‘문화’가 뭔가라는 물음에, 문화는 ‘신선한 공기’라고 그는 강조한다.

    사람이 하루 24시간을 쓰면서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나머지 8시간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그 나머지 8시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밀폐된 사회에서 찌들며 살다가 산속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 그저 좋아서 입을 벌리는 것처럼, 여기 오는 사람들이 나머지 8시간 중 일부를 잔디를 보고, 공원을 보고, 야생화와 만나고, 전통예술에 빠지고 그래서 신선한 공기 듬뿍 마시고 돌아가 활기차게 생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지방문화 확산의 전령사라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가야문화예술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김해시민을 비롯, 연간 6만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에는 시민들이 가볍게 찾아 편하게, 의미 있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가야문화예술관은 줄곧 서예와 국악을 배우고, 체험 위주의 문화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그것도 시내지역이 아닌 진례면 농촌지역에 떡하니 들어선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도·농간 문화 격차가 해소되고, 농촌지역 사람들의 문화예술 수준이 높아졌다.

    이후 진례면에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이 생기고, 도예촌이 생기는 등 가야문화예술관은 농촌지역 문화 창달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지난 1999년 인허가 당시 김해시청 문화예술계장 장광범(현 문화예술과장)씨가 나의 프로젝트를 듣고 도농간 문화예술 가교 역할을 주문하면서 예술관의 길을 열어 줬다”고 밝혔다. 시청에서 볼 때 김해시의 규모는 커 가는데, 문화예술을 향유할 공간이 부족했던 것을 인지, 송 이사장의 계획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고통 속에 피어난 인덕의 꽃

    그는 2003년, 2004년 태풍 루사와 매미 때 많은 걸 잃었다. 정원의 나무가 다 넘어지고, 미술관·국악실 지붕이 날아가고, 식물원 분재가 엉망이 되고, 한손 한손 가꾼 정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절망이었다. 고향 김해에서 좋은 문화예술활동 한번 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했는데, 하늘은 그 선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오냐 너 얼마나 더 버티냐’는 식으로.

    하지만 그와 아내 선봉이(55)씨는 다시 호미와 삽을 잡고 진창이 된 땅을 파고, 쓰러진 나무를 세우며 하늘의 시험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들에겐 ‘인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외롭게 땅을 일구고 있을 때 친구들이 찾아왔고,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이 다녀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힘내라, 파이팅”을 외쳐줬다. 그리고 성금을 한 푼 한 푼 내놓았는데, 무려 2600만원이 모였고, 그 성금으로 인해 그들은 하늘의 시험을 빨리 통과할 수 있었다.

    “많이 울었다. 아내와 엉망된 땅을 일구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나에게 인덕이란 게 있었던지, 주변에서 그렇게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고 회상하는 송 이사장은 “그들에게 특별히 베풀지 못했는데, 그저 차 한잔 대접하고 따뜻하게 맞이한 것뿐인데, 재기를 도와준 그들이 너무 고맙다”면서 눈가의 이슬을 훔쳤다.

    송 이사장은 취재 말미에 아내 선씨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는 아내에게 “50 중반의 한창 나이에 예술관 가꾼다고 70세 할머니 손이 다 됐네. 10년을 하루같이 일만 하고, 흙 만지고, 물 만져서 손에 습진이 떨어질 시간이 없었지, 미안…해”라고 말하며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예술관에 온 시민들이 그저 편하게 쉬고 가는 게 최대 보상이라는 송 이사장. 예술관에 사재를 붓고, 부부의 편안한 사랑과 인생마저 헌납하고서도 “난 모든 것을 가졌다, 외로워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그에게서 가야문화의 중후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김해 가야문화예술관은 어떤 곳

    김해시 진례면 신월리 440-2(구 신월초등학교)에 위치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만2140여㎡의 부지에 조각공원과 야외문화공연장으로 활용되는 6600여㎡의 잔디밭 운동장, 그리고 도자기 작품 전시실과 서예 회화작품 전시실이 있는 345㎡ 규모의 건물 1동과 수석 전시실, 민속예술단 연습실, 휴게실 등이 있는 330㎡ 규모의 건물 1동이 있다.

    또 건물 뒤편엔 과수밭이 있고 건물동 옆에는 각종 야생화 등을 키우는 원예원이 있다. 꽃 심기, 주물럭 도자교실, 도자 채색, 고구마 알밤 구워 먹기, 송편 만들기, 우리차 마시기 등의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

    글=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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