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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12) 고성 귀향 19년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고향 품에 안기니 집필 에너지가 절로 생깁디다”

  • 기사입력 : 2009-08-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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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고성 자란만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세가 어우러진 ‘배산임해’(背山臨海)의 하일면 송천리 송내마을. 시골 마을의 넉넉한 풍경이 휴식처럼 다가오는 이곳에 19년째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는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인 김열규(78·서강대 명예교수) 선생.

    집 앞 텃밭에는 고추, 상추 등 다양한 채소들이 자라고 앞마당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안으로 들어서자 환한 얼굴의 김열규 선생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백발의 머릿결이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할 뿐 그의 미소는 마치 어린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는 듯하다.

    ◆낙향(落鄕)이 아닌 상향(上鄕)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고성으로 내려온 지 벌써 19년째다.

    늘 자연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에 사무쳐 있던 김 교수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으로 돌아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91년 고향 고성행을 택했다.

    1950년부터 서울에서 살았으니 피란 기간 2년을 빼면 38년간의 서울생활을 청산한 셈이다.

    “이러다간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끊고 고향으로 내려왔죠” 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삶의 여정이 묻어난다.

    특이한 질병도 한몫했다. 그는 서울에 있으면서 겨울이 되면 알레르기로 고역을 치렀다. 일명 ‘콜드 알레르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10월이 되면 눈·코·입 등에서 알레르기 현상이 일어났다. 겨울이면 늘 병원 신세를 지던 그에게 의사는 겨울에 따뜻한 곳에서 보낼 것을 권했다. 그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따뜻한 고향 남쪽바다 ‘고성’이었다.

    “정말 희한하죠. 수십년을 앓은 병을 고향에 온 지 2년 만에 씻은 듯이 나았으니 말이에요. 만약 내가 건강을 잃었다면 여기서 14~15권에 이르는 많은 책을 도저히 쓸 수 없었겠죠. 서울에 있었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남들이 자신에게 낙향(落鄕)했다 말하면 절대 그런말 쓰지 말라고 상향(上鄕)이라 말하라고 권한다.

    결국 그의 상향 동기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내게 돌아오고, 자기가 가꾸는 일 가꾸고, 질병으로부터의 탈출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왕따&책벌레

    그의 인생에서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의 독서는 글을 깨치기 전 어릴 적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로 시작되는 구수한 할머니의 옛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어릴 적 엄마가 아닌 할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할무이 이바구…, 하면 아이고 이 자슥 또 이바구가…”라고 말한 후 옛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는데 어쩌면 이것이 동화책을 찾게 된 첫 관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에게 위대한 문학교사였다. 그의 동화와 문학읽기는 할머니와 더불어 시작됐다. 그래서 자신의 첫 학술서적 표지에 ‘이 책을 할머니에게 바친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소학교 시절 몸이 허약해 별명이 ‘약골’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게 자연스레 ‘왕따’를 당했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사귀기가 어렵게 되자 그는 밤낮없이 책상에 주저앉아 책읽는 것이 버릇이 됐다. 어쩌면 이것이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김 교수는 “만약 내가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적이었다면 책하고 친해지지 않았을 거예요. 놀기도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요”라며 껄껄 웃는다.

    그는 하루 24시간 거의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에 묻혀 살았다. 어릴 적에는 동화, 소설을 읽었고, 고교시절에는 에세이, 철학, 문학 등을 즐겨 읽을 정도로 ‘책벌레’로 변했다.

    추운 겨울이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목만 ‘쏙~’ 내밀어 책을 읽기도 했는데 깜박 잠이 들면 침이 흘러 책에 얼룩이 졌다. 아침에 일어나 책이 침으로 얼룩진 것을 보고 ‘아! 내가 책을 열심히 읽었구나’라며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기도 했다는 김 교수. 그에게 있어 책벌레라는 별명은 명예로운 훈장이었다.

    ◆책 찾아 삼만리

    책 구하기가 어려웠던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란 그는 시내의 ‘박문당’ 책방을 자주 이용했다. 하지만 이 책방은 주로 교과서 등 참고서만 팔아 읽고 싶은 책은 주로 친구들과 바꿔 보고 집 근처 대본집(책을 빌려주는 집)에서 빌려 보았다.

    김 교수는 “아마도 그때 대본집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책 구하기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죠”라며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그가 책을 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방법은 야시장. 일제시대 전차가 다니던 부산 광복동에 일요일 밤만 되면 야시장이 열려 그곳에서 다양한 책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에게 해방은 ‘책더미’를 안겨다 주었다.

    해방이 되자 일본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관부연락선이 오가는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성난 사람들은 이들의 짐을 압수해 경매에 부쳤다.

    짐이 든 가방에서 돈다발이 나오기도 했지만 책은 대부분 버려졌고 이것이 바로 김 교수가 장서할 수 있었던 첫 길이 되었다.

    이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학이 부산으로 피란을 하게 되면서 시련을 겪었다.

    당시에는 공책을 구하기 힘들어 부산 국제시장에서 미군들이 써다 버린 파지(이면지)를 뭉텅이로 사서 공책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그는 파지더미 속에서 미군들이 읽고 버린 새터데이 리뷰(Saturday Review) 등 교양서와 스탠리 하이먼의 ‘암드 비전’(Armed Vision)이라는 영국 비평론 입문서 등을 발견했다. 그에게 있어 이 책들은 값진 보물이었다. 여류철학가 랭가의 철학책도 파지더미 속에서 구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의 학문은 1차적으로 해방 뒤 찾아온 책더미 속에서, 2차적으로는 미군들이 쓰다 버린 파지더미 속에서 시작됐으니 ‘쓰레기 더미 속에서 건진 학문’이라 말한다.

    ◆글쓰기는 계속…

    그는 요즘도 작품 구상에 여념이 없다.

    지난 6월 ‘노년의 즐거움’을 출간한 데 이어 7월에는 ‘한국인의 돈’을 내놓았다.

    또 2~3개월 후면 우리들의 정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이야기와 풍습 등을 소재로 한 ‘지금은 사라진 것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리고 아직은 구상 중이지만 나이를 먹은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고통’을 주제로 한 ‘청소년들에게 고한다’(가제)를 집필할 예정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김 교수는 “젊은 시절에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고난과 고통이 인생을 만들어간다. 결코 즐거움과 쾌락이 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쾌락만 좇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쾌락의 의미도 변질됐다. 원래 쾌락·향락주의(Epicureanism)이란 말은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로스(Epicouros)의 사상인 정신적 쾌락주의로, 주로 야외(녹색공간)에서 여유있게 산책하며 철학적인 담소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타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시대는 ‘나만 있고 우리가 없는 사회’라 말한다. 남이 없다는 것은 무서운 사회로 이제부터라도 남을 존중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바둑, 장기, 닭싸움 등 경쟁을 통해 게임의 규칙을 지키며 친구들과 어울려 저절로 인간관계가 형성이 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문학자 김열규 선생은 가장 한국적인 것 속에서 세계적인 것을 찾고 가장 예스러운 것에서 가장 현대적인 것을 끄집어낸다. 그의 주변에 있는 잡다한 사물 가운데 어느 하나도 우연히 내던져진 것은 없다. 그는 사물들 속에 숨어 있던 의미를 찾아내 하나의 그물로 엮어 낸다.

    글·사진=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김열규= 1932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및 민속학을 전공했다. 서강대학교 국문학 교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학'의 석학이자 지식의 거장인 그의 반백 년 연구 인생의 중심은 '한국인'이다.

    저서로는 '독서', '한국인의 자서전',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욕', '한국인의 화', '한국인의 신화', '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 가지',  '고독한 호모디지털', '기호로 읽는 한국 문화'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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