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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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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상실의 계절- 조화진(소설가)

  • 기사입력 : 2009-09-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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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고 보면 여름도 잠깐이었던 듯싶다. 올해 여름은 긴 장마 때문에 서늘했다. 더위도 잠시 머물더니 곧 9월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을이 왔다. 어쩌면 겨울이 빨리 찾아오던가, 아니면 긴 가을날이 평균보다 더 오래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올해엔 유난히 상실이 큰 해였다. 우리가 잘 알던 사람들이 세상과 결별했다. 봄날 아침 충격적인 소식에서부터 문학가, 전 대통령, 그리고 영화배우 같은 스타 등등….

    마치 물폭탄 같은 소식이 차례로 들려왔다. 우리는 모두 계절을 느낄 새도 없이 고통과 상실을 느껴야만 했다. 부음이 들려올 때마다 망연자실, 의욕이 없어 하던 일을 멈춘다. 유명인의 죽음은 몇 배 더 크게 다가온다. 그만큼 그들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상실감이 더 클 수밖에. 개인적으로야 당연히 알지 못하지만 방송이나 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게 되고 존경하게 되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는 건 슬픈 일이다.

    내게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한 사람의 벗이 있다. 그는 나를 자주 불러냈다. 내가 연락을 하려고 하면 그에게서 만나자는 문자가 오고, 궁금하기도 전에 내가 그를 찾았다.

    그렇게 10년 이상 된 관계였다. 소박한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공원의 벤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때로는 가까운 산을 오르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주 가끔은 서로의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는 뜻이 통했다.

    정확히 작년 겨울이 시작되고 그는 내게 연락을 끊었다. 나는 많이 당황했고 그의 소식을 알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꽁꽁 숨어버렸다. 그렇게 소식 없이 몇 달이 흐르고 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딱 두 개의 메시지였다. 메시지의 내용은 모호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에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아픔이 무엇이며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알리기 싫은 극대치의 문제가 신상에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는 상상을 할 따름이다. 나는 뭔가 애절한 문자를 보내 위로하거나 수소문해 찾아가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리하지 못했다.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더 나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나는 몇 번의 계절을 상실을 안은 채 맞이하고 보내야 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불쑥 그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오기를 소망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이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달의 궁전’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극단적으로 치닫는 삶 앞에서 상실을 겪으며 최악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퇴락의 길에서 인생을 배워나가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나 암울하지 않은가. 모험심은 때로 인생을 곤두박질치게 하는 것이란 걸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이 소설에는 생(生)의 궁극이 있다. 젊기 때문에, 야망이 커서 또는 치기로든, 누구나 한때는, 격정적인 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짧고 굵게….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며 나도 한때는 몽상가 같은 꿈에 빠진 적이 있었다. 허나 인생은 그렇게 살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생은 누추하고 보잘것없고 가늘기 짝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참 무난하게 흘러가는 게 대부분의 우리들 인생인 것 같다. 그날이 그날 같은 도돌이표 식의 삶은 건조하지만 일상 속에서 작은 안위를 얻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디지털 시대라서 그런가, 물질의 풍요는 차고 넘치지만 마음은 점점 더 소외되고 결핍을 느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시대에 사는 듯하다.

    왠지 근래엔 키워드가 상실인 것만 같아 마음이 스산하다.

    조화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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