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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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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16) 역돔 양식의 선구자 배동한

“30년간 역돔과 동고동락하며 한 마리 한 마리 꿈을 키웠죠”

  • 기사입력 : 2009-09-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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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동한씨가 창녕군 도천면 도천리 역돔 양식장에서 출하할 역돔을 들어보이고 있다.



    “저는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돔 양식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배동한(57)씨를 취재하기 위해 전화로 섭외를 요청했을 때 들려온 첫 마디다.

    매몰차기까지 한 그의 말에서 섭섭하다기보다는 지나친 겸손일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평생 한 분야를 개척하며 살아온 외길 인생답게 그의 강단 있는 목소리만으로도 신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우회적인 압력(?)을 통해 그를 만나기까지 2주가 걸렸다.

    역돔 양식과 연구에 30년의 인생을 걸었지만 여전히 채우지 못한 국제경쟁력 있는 새로운 육종 개발의 갈증과 무공해 먹을거리를 양식하겠다는 배씨의 완벽성과 집념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20대 젊은이의 어떤 꿈

    바다에서 잡는 어업에만 치중하며 기르는 어업이 생소하던 시절인 70년대. 배씨는 우리나라 삼면이 바다인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관심을 가지다 생각한 것인 물고기 양식이다. 잡는 어업에는 한계가 있고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물고기를 기르는 것이 살길이라는 생각에서 입학한 곳이 부산 소재 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 1974년 양식학과에 입학한 그는 우리나라 양식학계의 원로인 김인배 교수의 지도 아래 양식업에 대해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양식업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시절이었던 만큼 대학에서 양식 시설을 직접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작업부터 물고기를 기르는 실험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체험적인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대학에는 당시 수준으로는 고밀도 연구시설이 설치돼 있었던 만큼 양식에 대한 공부만큼은 실컷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졸업 때쯤 한 사업가가 창녕 죽전에 일본에서 역돔을 수입해 양식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배씨를 추천하면서 고향에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가 둘러본 양어장은 고기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전혀 갖추지 않아 한계를 느끼게 되고 결국 배씨는 자신이 직접 양어장을 운영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1980년 양가 부모의 허락하에 예물을 생략하고 400만원의 결혼 자금으로 200평 규모의 양식장을 마련,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학교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자신이 있었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신기루처럼 돈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굴곡의 30년 역돔 양식

    양식업은 작업 환경이 고되고 열악해 3D업종으로 불린다. 새벽 5시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하루 4차례에 걸쳐 사료를 주고 자기 집처럼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물고기 몸종 노릇을 해야 한다. 하지만 기르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던 그는 한때 15명의 직원을 데리고 양식장을 운영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한 탄탄한 양식 기술과 기르는 사업만이 살길이라는 열성, 부지런함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물론 그의 양식 기술과 시설은 후발 양식업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표본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배씨에게도 냉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대량생산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양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세계무역질서가 무한 자유 경쟁인 WTO 체제로 전환되면서 수입 자유화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배씨는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직접 고기 유통을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그는 사업 기질을 발휘해 가락, 구리 등 3곳에 도매시장 중도매인 자격을 따서 점포를 열고 본격적으로 유통사업을 시작한다. 경기 하남에 축양장을 또 하나 만들 정도로 사업은 번창해 직원 30명에 서울에만 점포 7개를 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1998년께 중국서 저가의 물고기들이 대량 수입되면서 직격탄을 맞게 된다. 4~5년간 적자가 지속되면서 당시 전국적으로 600여 곳에 달하던 역돔 양식장들은 대부분 손을 털고 지금은 4~5군데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도 적자를 견디지 못해 양식장이 경매에 넘어가기도 하는 등 최악의 나락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한때 1만㎡에 달하던 그의 도천 양식장도 점점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시장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는 완벽하게 무공해여야 한다

    적자를 견디다 못해 사료값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배씨의 도천양식장 한쪽에는 여기서 생산한 역돔을 직접 요리해 파는 식당이 있다. 식당 입구에는 도천양식장에서 생산한 역돔은 디스토마가 없다는 무공해 검사인증서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15년 전부터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씨는 “먹을거리는 완벽하게 완전 무공해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만큼 도천양식장 시설은 역돔이 청결하게 살 수 있는 친환경시설로 손꼽히고 있다. 일단 양식장을 모두 비닐하우스로 덮어 외부로부터 디스토마균 등이 침투할 수 있는 감염 경로를 차단하고 있다. 8각형 모양의 독특한 양식장에는 고기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암모니아를 해소하기 위해 이를 빨아들이는 식물을 심어 자연적으로 공기를 정화할 수 있도록 해 양식장에서 발생하기 쉬운 질병을 근본적으로 없앴다.

    이 시설은 모두 그가 30년 동안 양식업 체험을 통해 몸소 느끼고 연구한 것을 직접 고안해 만든 작품이다.

    ▲다시 꾸는 꿈

    그의 양식장에는 매년 양식업을 배우기 위한 외국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가나에서 50여 명이 견학을 왔다 가기도 했다. 그의 양식 기술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수준이다.

    요즘 그는 한국이 양식업에서 국가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길에 몰두하고 있다. 다름 아닌 육종 연구다. 그가 일생을 연구한 역돔 양식이 쇠퇴하고 있는 이유는 25℃ 이상에서만 살 수 있는 서식 환경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름값 등 원가가 많이 들어 타 어종에 비해 가격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해서다.

    이 때문에 그의 양식장 한쪽에서는 6~7년 전부터 5℃의 낮은 수온에도 견딜 수 있는 한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육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는 “이제 약 70%가량이 진척된 것 같다”고 성공 가능성을 비쳤다. 육종 연구가 성공하면 특허를 내고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받고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는 싼 가격으로 ‘배동한표 역돔’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는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먹을거리로 가장 가능성 있는 고기로 역돔을 제시할 만큼 단백질이 풍부해 미래 양식어종으로 적합하다고 자신했다.

    ▲에필로그

    배씨의 역돔 양식 외길은 그의 아내 곽순영(53)씨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첫마디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라며 무한한 존경심을 보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배씨를 돕기 위해 남편의 대학에서 1년간 수산업 관련 청강도 하고, 사료도 만들어 보는 등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배씨는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사료값을 지불하고, 다음으로 직원 월급을 챙기다 보니 아이들의 학비나 생활비가 뒤로 밀리는 수도 많았다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고생담이다. 그렇게 자란 큰아들은 영국에서 외환딜러를 하고 있고, 둘째와 셋째는 중국 북경대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며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그런 아내의 내조 때문에 그가 역돔 양식 외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배씨는 “30년간 역돔 양식에 종사해 왔는데 국가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육종을 개발하는 것만이 내가 살아온 이유이고, 살아야 할 이유다”고 말한다. 국가나 시설이나 자금이 풍부한 연구기관에서도 관심이 없는 일에 60세를 목전에 둔 개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선 셈이다.

    그의 꿈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른다. 쉽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점점 행복해지지 않을까.

    ☞역돔이란= 힘이 세 힘 력(力) 자에 감성돔을 닮았다고 해서 역돔이라 부른다. 원래 명칭은 틸라피아다. 원산지는 아프리카로 25℃ 이상의 온도에서 사는 열대어다. 알을 입속에서 부화하는 소위 구중부화를 하며,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되면서 성베드로고기라고도 한다.

    글=이현근기자 san@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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