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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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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장(家長)의 안식처- 홍혜문(소설가)

  • 기사입력 : 2009-09-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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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명절을 앞둔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재래시장이 너무도 한산하여 상인들의 한숨만이 시장을 맴돌고 있다. 물건이 잘 팔리질 않으니 중소기업이나 공사현장에서조차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해고되는 근로자들이 많다.

    경기가 침체된 시기라 직장에서 해고되었을 때,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그러므로 가족을 부양한 가장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 교외로 나가다 보면 차가 다니는 정체 구간에는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뻥튀기를 파는 아저씨들이 있고, 한갓진 도로변에는 술빵이나 옥수수, 파인애플을 팔기도 한다. 고속도로변에는 중국산 장난감을 놓고 파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나마 피땀 흘려 돈을 벌 수 있으니 그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나는 길을 가다가 통신용 맨홀 속에서 일하는 한 중년남자를 본 적이 있다. 맨홀 안은 작고 깊은 데다 전화선 같은 것이 빽빽하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숨 막히듯 답답해 보였다. 맨홀 안의 그 어둠이 힘든 우리의 마음만큼이나 멀고 아득해 보였다. 좁고 깊은 우물과도 같은 저곳에서 일하다 질식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분은 아침 일찍, 아니면 새벽부터 일하러 나왔을 테고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할 것이었다. 맨홀 아래로, 그 아저씨의 노란 안전모와 함께 드러난 얼굴과 목에서는 비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이 너무도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져 존경심마저 일었다. 중년의 그 아저씨가 자신만을 위해 저렇게 힘든 노동을 하고 있을까.

    내 아이들이 끼니마다 밥 굶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과거 우리 부모님들의 희망이자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힘들게 일하는 부모의 마음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었다. 배가 고파도 저녁에 돌아올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넉넉해졌다. 부모님이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삽짝 밖에 나가 기다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가족들의 마음은 한 우물처럼 둥글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밤새 회사일로 몸을 뒤척이다 새벽녘에 일터로 향하는 아버지들. 질주하는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생명을 걸고 일하는 사람, 비지땀을 흘리며 차도에 검은 콜타르를 칠하거나 벌건 얼굴로 쇠붙이 용접을 하는 아저씨,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손님을 찾아다니는 택시 운전사, 등이 휘도록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이삿짐센터 직원….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사람 역시 자리다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사원 감축이 몇 차로 단행되는 과정에서 살아남기란 전쟁터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그들은 당연히 치러내야 하는 일인 듯 스스로를 그 힘든 시간 속에 기꺼이 바치고 있다. 우리 가장들의 희생의 모습은 인도의 고전 ‘베다’에 나오는 ‘신에 이르는 길’의 한 방편 중 ‘고행과 땀을 통한 희생’, 즉 ‘자신을 제사 지내는 행위’와도 같아 보인다.

    해 지는 저녁, 하루의 무거운 피로를 안고 다리가 휘청거릴 만치 쓰러질 듯 집으로 돌아오면 그 마음을 반겨주는 마음의 안식처가 아쉽다. 요즘은 아이와 아내를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도 제법 있고 이혼한 가정도 늘고 있다. 벽이 가로놓인 가족 간의 거리는 강을 사이에 둔 것보다 더 아득하고 멀 수 있다. 80년대와 90년대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우리의 가장들이 종이박스를 들고 지하철 입구나 관공서를 서성이며 자살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는 광경은 더 이상 희귀한 모습이 아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그들은 막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평생을 몸 바쳐 일하고도 가족들로부터 얼음장과도 같은 벽을 느끼는 건 꼭 경제가 어려워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의 어깨가 무너져 내릴 듯 힘들어도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힘을 얻고 일을 할 수 있는 건 그 노곤한 몸을 반겨줄 가족들의 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석이 가까워졌다. 우리네 마음도 보름달 같이 여물어 갔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반겨줄 마음의 고향, 따스한 가슴이 그리운 시간이다.

    홍혜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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