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사람의 향기 (17) 장영길 사천 영길참다래농원 대표

“20년 뚝심에 땅심 더해 ‘토종 단맛’ 길러냅니다”

  • 기사입력 : 2009-10-06 00:00:00
  •   

  • 사천시 이홀동 영길참다래농원 장영길 대표가 골드키위 시설재배 단지에서 열매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986년 9월 남아메리카의 우루과이에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이 열렸다.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다. 농산물을 포함해 섬유, 서비스 등의 분야를 국제 무역협상의 의제로 새로 채택한 우루과이라운드는 7년여에 걸친 치열한 협상 끝에 1993년 12월 타결됐다.

    사천시 이홀동 와룡산 아래 구실마을에서 영길참다래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장영길(51) 대표. 그가 참다래를 심기 시작한 때가 바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개시되던 그해였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됐죠. 저도 농사를 짓는 몸이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주변 분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고, 또 나름대로 공부도 했죠. 결론은 더 이상 쌀 농사로는 힘들다는 것이었죠.”

    △벼농사 그만두고 참다래 심다

    구실마을에서 태어나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영길씨는 방위산업체를 거쳐 1982년부터 인근에 있는 삼천포화력발전소에 근무했다. 아홉 가지 열매를 뜻하는 구실(九實)마을에서 직장생활 틈틈이 벼농사를 짓던 그는 새로운 소득원으로 생각한 참다래 즉 키위를 1600여㎡의 땅에 정성스럽게 심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참다래는 국내에서 그리 흔한 과일이 아니었다. 현재는 전국의 참다래 재배 면적이 1200㏊에 이르지만, 1986년엔 10㏊에 그쳤다. 국내에서 생산된 참다래는 국내 전체 소비량의 10%에 머물던 시기였다. 나머지는 세계적 주산지인 뉴질랜드에서 수입되고 있었다.

    참다래는 원산지인 중국에서 뉴질랜드로 전파된 뒤 그곳에서 키위 후르츠(kiwi fruit)라는 이름을 얻었다. 뉴질랜드에 사는 새인 키위와 생김새가 닮은 과일이라는 뜻이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유통되고 있는 속이 녹색인 그린키위는 뉴질랜드의 제스프리사(社)가 개발한 헤이워드, 골드키위 역시 제스프리가 개발한 제스프리골드 품종이 대부분이다.

    장 대표가 인연을 맺었던 키위도 제스프리의 헤이워드였다. 아내 이채자(48)씨와 ‘참다래 인생’을 열어 가던 그는 1994년 농협이 수여하는 ‘새농민’상을 부부 공동으로 수상한 데 이어, 2년 뒤에는 ‘자랑스런 신한국인’에 선정됐다. 꽃가루 채취기와 인공수분기를 자체 제작해 도내 400여 농가에 보급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공고에 다닐 때 기계를 전공했습니다. 당시에 익힌 기술이 도움이 됐죠. 농기계를 사면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작업의 내용에 맞춰 부분적으로 개조해 사용했죠. 인공수분기 등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농작물은 땅을 따라간다

    장씨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06년 전국참다래협의회 정기총회 자리에서 참다래를 농작물재해보험 대상 작물에 포함시키도록 정부에 건의하자고 회원들을 설득, 이듬해 시범종목으로 선정되는 결과를 얻었다. 2002년과 2003년 한반도 남부지역을 강타한 태풍 루사와 매미로 큰 피해를 겪으면서 농작물 재해보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또 2007년에는 한·칠레 FTA 체결 후속 대책으로 국내 과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기금 1조2000억원 가운데 55억원을 경남지역 참다래 농가에 지원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참다래 재배 7년 만인 1993년 농산물품질관리소(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품질인증 마크를 사천지역 최초로 획득한 그는 2001년부터 저농약 재배를 시작으로 유기재배에 들어갔고, 4년 만인 2005년 무농약인증을 받기에 이르렀다.

    “유기재배라고 해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예전처럼 농약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돈도 많이 들고 수고로움도 더합니다. 그러나 유기재배로 얻는 이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깨우치는 순간, 농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됩니다.”

    예상 밖의 일로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인근 농토에서 살포된 농약이 노지 재배 단지에 날아오는 바람에 무농약인증을 6개월간 정지당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었죠. 그런 것도 극복해야죠. 흔히 ‘땅심’이라고 하는 지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기재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과실도 좋아집니다. 모든 농작물이 땅을 따라가는 겁니다.”

    △열정·노력 쏟아부은 국산 골드키위

    장씨는 현재 모두 2만여㎡의 밭에 키위를 재배하고 있다. 1만㎡와 3300㎡ 크기의 비가림 시설재배 단지 각 1개 동과 노지재배 단지 6600여㎡ 등이다.

    지난달 30일 취재진이 장씨의 안내로 시설재배 단지에 들어갔을 때, 사람 키 높이로 뻗어 있는 줄기마다 탐스러운 키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올해 11월 초순쯤이면 수확에 들어간다고 한다.

    장 대표는 최근 몇 년 동안 한 해에 1억2000만원가량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대부분 그린키위를 통한 수입이었다. 그러나 이제 소득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됐다. 그동안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골드키위를 한두 달 뒤면 시장에 선보이기 때문이다.

    2000년 회사를 그만두고 키위 농사에 전념하던 그는 지난 2005년 경남도농업기술원의 추천으로 싱가포르 식품박람회에 참가했다.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당도가 높은 과일을 선호한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그린키위에서 골드키위로 품종을 바꿀 결심을 했다.

    골드키위는 제스프리사의 관리 아래 2004년부터 제주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는 묘목이나 접 붙이기를 위한 접순 분양을 제스프리사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2년 뒤, 농촌진흥청이 국산 골드키위 품종인 ‘제시골드’를 개발해 지난 2003년부터 제주에서 시험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묘목 분양을 요청했다. 이번에도 역시 퇴짜를 맞았다. 제주 이외 지역으로 묘목을 유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박홍수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섬 지역이 아닌 내륙에서도 제시골드를 재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고, 결국 애타게 기다리던 골드키위 묘목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박 장관님 하고는 전혀 친분도 없었어요. 그래도 한번 부딪혀 보자고 맘 먹었지요.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의 농원에서 자라고 있는 제시골드는 모두 280그루로, 그동안 재배하고 있던 키위 중 70%가량을 골드키위로 바꿨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갑니다. 골드키위를 도입한 지 3년째인 내년에는 100%까지 수확량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경우 1만3300여㎡의 골드키위 밭에서만 4억여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 대표를 따라 농원을 둘러보던 중, 제시골드 작황 조사를 하고 있던 농업기술원 과수연구실 정병만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제시골드는 당도가 매우 높고 또 수확량도 많은 품종으로, 접을 붙이는 방식으로 수종을 갱신했을 경우 늦어도 3년이면 정상적 수확을 할 수 있다”며 “특히 이 농원의 제시골드는 예상을 뛰어넘는 생육상황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우리 농민의 무기는 ‘정성’

    장씨의 농원에는 제시골드 외에도 다양한 신품종 키위가 시험재배되고 있다.

    ‘경남지역 참다래 신품종 적정 수형 개발포’라는 안내판이 붙은 시설재배 단지에 들렀다. 다양한 종류의 키위를 소개하던 장씨가 어린아이 주먹만한 키위 한 개를 따 반으로 잘랐다. 속이 빨갛다.

    “레드키위입니다. 키위의 원산지인 중국에서 개발된 품종입니다. 조금 더 지나면 붉은 색이 더 진해집니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스키니그린은 국내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다래를 빼닮았다. 열매의 크기만 훨씬 클 뿐, 그 모양새가 그대로다. 키위의 특징인 잔털도 전혀 없다. 그래서 스키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밖에 제시골드와 함께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한라골드, 전남도농업기술원이 만들어 낸 골드키위인 해금도 같이 자라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맨 처음 제시골드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한 그는 지난해부터 경남은 물론 전남지역 농가에 묘목과 접순을 보급하고 있다.

    “골드키위 시장 규모가 전체 키위 시장의 10%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성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죠. 특히 참다래 판매액의 15%가 로열티로 외국회사에 넘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제시골드를 키우는 것이 곧 외화를 버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는 뉴질랜드산 키위와의 경쟁에 대해 강하게 자신감을 내비쳤다.

    “뉴질랜드는 청정 이미지가 강합니다. 농산물 재배와 판매에 큰 플러스 요인이죠. 그러나 상대적으로 소규모로 키위를 재배하고 있는 한국의 농민들은 ‘정성’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나무는 정성을 기울인 만큼 품질로 화답합니다. 우리 농민들이 아직 국산 키위 품종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제시골드가 다음 달부터 본격 출하되면 그런 인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최근 전국 골드키위 재배 50여 농가 중 20여 농가로 한국골드키위영농조합법인을 조직한 그는 순수 국산 골드키위 품종인 제시골드로 ‘참다래 인생 2막’을 열어 가고 있다.

    글=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서영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