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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18) 하용부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남을 즐겁게 한 게 아니라, 내가 즐거워 춤 췄지요”

  • 기사입력 : 2009-10-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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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영남루에서 인터뷰를 마친 하용부씨가 밀양백중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2009년 봄, 프랑스 최고 무대인 파리12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의 한 공연장.

    동양에서 온 춤꾼의 생소한 춤사위는 유럽인들에게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양반춤, 밀양북춤, 범부춤, 영무 순으로 진행된 100분간의 공연 중간 중간 환호와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프랑스 파리 세계문화의 집이 주최하는 ‘상상축제(Festival de l’Imaginaire)’에 초청된 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하용부(54)씨.

    우리나라 마당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할배 춤이 좋았던 무동(舞童)= 다섯살 아이는 할아버지의 춤사위가 좋아 씨름판, 소싸움판 등을 따라다니며 춤을 췄다. 할아버지는 딱히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지 않았고, 소년은 그저 보고 느끼는 대로 어깨를 들썩이며 놀았을 뿐이었다. 풍물패 모갑이로 소문난 춤꾼이었던 증조부 하성옥 옹, 1979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조부 하보경 옹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춤의 유전자는 이미 하용부씨를 춤꾼으로 운명지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1960년대 중반. 새마을운동으로 상징되는 당시의 사회적 시각은 전통예술을 향락문화로 치부, 하씨에게서 춤판을 앗아갔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하씨는 5년 만에야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군 제대 후 한전 밀양지점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하씨는 1981년부터 조부 하보경 옹의 제자로 정식 입문하면서 잠깐 이탈했던 삶의 궤적을 회복했고, 1990년에는 10년간의 직장생활마저 접었다. 2002년 마흔일곱 되던 해에는 예능분야 최연소 인간문화재가 됐다.

    하씨는 “현재의 내 모습은 나의 노력으로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증조부 때부터 4대째 이어져온 ‘내림’입니다. 조상들로부터 이어지는 ‘끼’를 발산하고, 그들과 호흡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한(恨)이 아닌 흥(興)의 문화= “우리 민족은 한(恨)이 많은 게 아니라 흥(興)이 많습니다. 우리의 몸속엔 감출 수 없는 신명이 있지 않습니까”

    하씨는 우리의 전통이 일제강점기 때 많이 말살됐다고 하지만 오히려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우리 손으로 없앤 것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면서 우리 고유의 마당에서 펼쳐졌던 신명문화를 카바레 등 음성적인 공간으로 내쳐버렸지 않습니까”라고 지적한다.

    “전통은 관객과의 교감입니다. 처음 듣는 운율이라도 태생적 교감을 느낍니다. 교감을 나눈다는 것이 춤꾼과 관객과의 대화인데, 이런 문화의 장에 학생들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 전통문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의식 속에 내재된 흥을 풀 수 있는 참여가 중요한데, 무엇보다 교육에서의 시도가 중요합니다. 수학여행 때 박물관이나 사찰을 방문해 우리 문화재를 관람하듯이 전통공연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고 강조한다.

    특히 하씨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에서 ‘사람과 기계(컴퓨터)와의 만남’으로 바뀌면서 각종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는 문화예술이고, 사람을 대중의 마당으로 끌어내는 데는 무엇보다 전통예술공연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고 덧붙인다.


    하용부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가 “자기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사람이 남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웃음을 짓고 있다.


    ▲세계적 무대, 상상축제 공연
    = 하씨는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3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적 공연축제인 상상축제에 초청돼 열정적인 공연을 펼쳤다.

    “갑자기 돌아보니 이미 내 춤 인생의 중간을 넘어 버렸더라고요. 이러한 시점에서 상상축제 초청공연은 내 춤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는 “일본은 가부키, 인도는 카탁, 브라질 삼바…. 그러면 한국의 춤은 무엇으로 대표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마당에서 펼쳐지는 신명나는 춤’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면서 “그런 점에서 일단 출발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라고 자평한다.

    “초청공연을 통해 마당에서 뛰어노는 한국인의 호흡을 전달한 것 같습니다. 처음 듣는 장단에 그들도 어깨를 들썩이더라고요. 서양 공연문화에서는 관객이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뒤풀이 마당 때 그들을 무대로 끌어내니 주저하지 않고 올라오더군요. 원초적 ‘끼’를 무대에서 표현해 낸다며 경이롭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 전통문화의 전환, 세계화의 길을 보았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도전할 겁니다”라고 결의를 다진다.

    ▲문화산업이 일류화의 키워드= “전통이니 아니니 우리끼리 떠들면 뭐합니까. 세계인과 공유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전통이 없는 현재가 없지만, 현재에만 머무른다면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전통을 더 깊이 해석하고 재정립해 산업화해야 합니다.”

    하씨는 전통문화예술산업을 통한 세계경쟁력 강화를 강조한다.

    “1980년대 영국 대처 총리가 ‘생산공장이 없어지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후 20년 만에 세계문화예술의 중심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옮겨갔습니다. 영국의 예술문화산업이 일류국가의 원천이 되고 있는 걸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경우 자국의 생산품 판매시장을 개척할 때 먼저 일본 전통문화를 소개한다고 합니다. 제품 판매소를 계약하기 전에 공연장을 먼저 계약해 전통문화예술 공연을 통해 일본문화를 소개하고 친화력을 갖게 한 후 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에 대부분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관계 인사들에게 먼저 줄을 대고, 로비자금을 들이미는 식이 되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기업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하씨는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예술단체 지원이나 기업 메세나운동에 대해 조금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예능인이나, 행정기관·기업들도 ‘공돈’을 주고받는다는 인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 전통예술문화의 세계화 시도는 예능인들에게만 맡겨졌는데, 이제는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 정부나 해당 지자체, 기업들의 전문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재정적 지원만 할 게 아니라 문화산업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획력과 기획시스템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만족한 자가 일인자= “춤은 하용부의 행복입니다. 남을 즐겁게 한 게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도 즐거워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사람이 남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가 1등인지 어찌 압니까. 1등이다, 2등이다 진정한 등위를 매길 수 있는 것은 죽고 난 뒤에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다 부질없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나 스스로 만족하는 자가 진정한 일인자라 할 수 있겠죠.”

    ☞밀양 백중놀이= 고된 농사일을 끝낸 머슴들이 음력 7월 15일께 용날을 선택해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놀던 놀이다. 이러한 놀이는 호미씻기라 해서 벼농사를 주로 했던 중부 이남의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밀양에서는 머슴날이라고 하며,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논다 해서 꼼배기참놀이라고도 부른다. 이 놀음 중에서 연희적인 요소들을 추려 정리한 것이 중요무형문화재 백중놀이다.

    밀양 백중놀이는 농신제로 시작하는 앞놀이마당, 작두말타기·양반춤·병신춤·범부춤·오북춤 등 온갖 춤판을 벌이는 신풀이마당, 대동 뒷놀이 등 세 마당으로 진행된다. 특히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북재비들이 북을 치며 둥그렇게 원무를 추거나 원 안과 밖으로 이동하며 춤을 추는데, 힘이 있고 멋들어진 춤이다.

    글=정오복기자 obokj@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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