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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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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 가을, 나는 건달이고 싶다.- 김 경(시인)

  • 기사입력 : 2009-10-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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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 독서와 무관한 계절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단풍 든 은행나무에게 마음을 뺏기던 낭만을 알던 사람들도 다들 어디론가 가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각 지역마다 향기롭던 축제의 폭죽소리도 신종플루의 서슬 아래 운신조차 제대로 못한 올 가을이 아니던가.

    우리는 가을의 진정한 맛을 잊어버린 채 그저 맥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잊어버린 채 우리 삶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끝내는 그런 것들로 인한 욕심에 허덕이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티베트에서는 우리의 몸을 ‘뤼’라고 한다. 뤼의 의미는 인간이 죽고 난 뒤에 남는 것을 의미하는데 말하자면 ‘안’과 ‘밖’ 혹은 ‘겉’과 ‘속’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루’ ‘포대’ ‘포장지’ 같은 것의 의미가 죽은 뒤 우리의 몸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다.

    결국 남겨지는 그 무엇, 무엇의 의미가 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살아있음의 의미는 짧은 시간 ‘육신’의 자루를 얻어 잠시 그곳에 머무르는 여행자라고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 살았을 적에도 그들은 적게 먹고 적게 가지며 죽은 후에는 육신조차도 바람에게, 새에게로 모두 내어준다. 티베트인들의 장례풍속은 아주 소박하면서도 낯설기도 하다. 특히 그들의 장례의식 중 하나인 ‘풍장’은 인간은 결국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그들에게 ‘죽음’은 또 하나의 다른 시작으로 몸의 맞은편에 존재하는 생명인 것이다.

    나는 문학, 그중에서도 시를 쓰는 사람이다. 혹자는 시인이라 함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해석과 몽환적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 또는 ‘건달’이라고 한다.

    문학인들을 ‘건달’이라고 부르며 사회의 부정적 인물로 몰아가는 것은 일찍이 우리 전통 사회의 예술인들에 대한 천시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건달’은 주변 인물 중 다분히 부정적으로 비꼬고 싶을 때 자주 사용한다. 그중에도 상대방을 더욱 격하시켜 부정하고 싶을 때는 ‘건달’ 중에서도 ‘날건달’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 항용 시인은 단골손님으로 초대 등장한다.

    국어사전에 건달은 ‘그저 하는 일 없이 건들건들 놀거나 난봉을 부리는 것,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고 나와 있다. 흔히 이를 낮잡아 건달꾼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건달’은 ‘백수’와 함께 잘 어울리는 말로서 ‘백수건달’이라고 할 때 가일층 그 낱말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원래 ‘건달’은 불교 용어 ‘건달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불교적 예술인’의 용어로는 풍객, 풍류, 선비로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민중들의 삶을 진지하게 서로 마주보고 이해하는 것, 어제를 얘기하고, 바로 오늘 이 시간을 얘기하는 것, 어떤 차별을 두지 않고 무엇인가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고백적으로 진술하는 사람이다.

    원래의 불교 용어 ‘건달바’에서 유래한 예술인의 용어 풍객, 풍류, 선비로서 ‘건달’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우리의 풍류와 시대를 지켜왔는가? 원융무애와 무애가무를 실천한 신라의 원효와 황진이의 마음을 흔들었던 당대의 서화담도 김시습과 연암 박지원과 윤동주와 이상과 천상병과 기형도도 ‘쪼잔한 인간’이 아니라 통 큰 보편지향형의 ‘건달’이었다.

    그러므로 무릇 ‘건달’은 순수의 미학을 견지하며 단속과 규율을 거부하고 풍류적 힘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넘나드는 선비적 인간형,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아는 시인을 일컬음으로 본다.

    빈 가을이다. 다만 나는 이 자연의 근처에서 나의 ‘뤼’를 부려 놓고 ‘건달’이 되고 싶다. 책 읽기도 멀어졌고, 예술인들이 조금은 폼 나던 곳곳의 축제들도 신종플루 때문에 실종된 이 가을,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아는 사람, ‘건달’이 되는 일 - 건달이 되는 길은 먼저 자연이 내 몸에 북채를 드는 것을 허용하는 일, 시인이여.

    김 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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