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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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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무의 마음으로- 정이식(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09-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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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등산길엔 산림 보전이 잘 되어서인지 청설모만 득실거리는 다른 산과는 달리 우리 다람쥐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산비탈을 빼곡히 덮고 있는 나무들, 졸참 자작 떡갈 상수리 너도밤나무 등,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 많아서 도토리가 주 먹이인 다람쥐들이 많지 않은가 사려된다. 다람쥐와 참나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과관계에 얽매어 있다. 동물에게 먹힘으로 배설을 통해 씨앗이 번져나가는 일반 나무들과는 달리 도토리는 도토리 자체가 씨앗이라 먹히면 그만이어서 멀리로의 번식을 할 수가 없다. 이 난제를 해결하여 주는 동물이 바로 다람쥐인 것이다.

    다람쥐는 이맘때면 무척이나 바쁘다. 겨울나기를 위해 쉴 새 없이 도토리를 물어다 땅속에 감추어 둔다. 그렇게 감추어둔 도토리를 겨울에 찾아 양식으로 삼는데, 머리가 아둔하여 열 개 중 여덟 개는 찾지 못하고 버리고 만다. 못 찾은 여덟 개의 도토리는 이듬해 싹을 틔우며 새로운 참나무로 자라게 된다. 이런 식으로 참나무의 번식을 다람쥐는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참나무의 벌목으로 도토리가 귀하게 되었고 다람쥐 또한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성숙한 참나무 한 그루는 최고 1만 개까지의 도토리를 생산하는데 그런 참나무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100여 개의 찜질방에서 하루 수천 그루씩 연기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40~50년생 참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찜질방들을 위해 당국은 벌목 허가를 쉽게 내어주고 그 자리엔 참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를 심고 있으니 먹을 것이 없어진 다람쥐들은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는.

    다람쥐가 적은 이유 중에는 청설모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1968년 어느 날, 비행기를 타고 시찰 중이던 각하는 대대적인 사방사업으로 푸르러진 산림을 보며 흡족해 하면서도 그 산에 뛰어놀 동물들이 적다며 매우 안타까워 하였다. 충성스런 각료들은 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외국산 다람쥐인 청설모를 수도 없이 들여 왔다. 자연은 나무와 동물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해 준다. 그럼에도 이 땅의 위정자들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필요 없는 아카시아만 온 산에 심어 놓고 도토리를 먹는 청설모를 풀어놓았다.

    평화롭게 살던 우리의 다람쥐들은 이때부터 수난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난폭한 청설모는 아카시아 밭을 탈출하여 도토리를 찾아 참나무 밭으로 몰려들었다. 영역 넓히기를 좋아하는 청설모들은 다람쥐들을 보이기만 하면 물어 죽이거나 심지어는 잡아먹기까지 하였다. 지금의 청설모는 30여 년의 긴 세월이 지나며 우리 도토리를 먹고 우리 산에서 산 이유로 성격 또한 많이 온순해져서 먹을 것이 풍부한 지리산 등에는 다람쥐와 같이 살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앞의 연유로 우리 다람쥐는 씨가 마르고 외국산 다람쥐인 청설모만 득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산돼지들이 가끔씩 민가에 나타나며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사람들은 산돼지도 다람쥐와 같이 도토리를 주 먹이로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산돼지뿐 아니라 곰 토끼 너구리 오소리까지 모두 도토리를 먹고 산다. 이런 산 짐승들이 참나무의 벌목으로 도토리가 귀해지고 무분별한 사람들에 의해 그나마도 착취를 당함으로써 다른 먹이를 찾다 보니 성질이 사나운 잡식성으로 자꾸만 변모해 간다.

    이 땅의 모든 것들엔 다 주인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러면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아마도 도토리를 먹고사는 산짐승들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주인의 허락을 얻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도토리를 주워 오는 사람들, 어디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먹을 것을 사람에게 빼앗긴 산돼지가 제 것을 다시 찾으러 민가로 내려오는 것,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정이식(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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