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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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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름다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유행두(시인)

  • 기사입력 : 2009-1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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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가을은 유난히 소란스럽게 오는 것 같다. 열병처럼 번져 가는 신종플루가 가을을 앞서 시끄럽게 다가왔고 단풍이 채 물들기도 전, 난데없는 눈이 내리는 바람에 심란해진 겨우살이 걱정이 겨울보다 앞서 다가왔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건너듯 아슬아슬한 텔레비전 뉴스도, 엇갈리는 의견으로 대립된 신문기사도 소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유난스럽게 시작된 밀레니엄 시대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지나간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조용한 날 없이 늘 시끄럽고 소란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세상은 시끄럽고 소란할지라도 조용조용 따라가는 세상의 따뜻한 이면도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는 세상의 이면은 큰소리 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자원봉사단체에서 어려운 사람의 손발이 되어주기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봉사하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도 그렇고, 전 재산을 털어 노숙자를 위한 식당을 꾸려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에 움츠러졌던 마음이 펴지기도 하는 이 겨울의 초입이기도 하다.

    얼마 전 저축의 날, 국민훈장을 받은 저축왕 신문기사가 그렇다. 내로라하는 연예인도 있었지만 ‘떡볶이 저축왕’이란 크지 않은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훈훈하게 데워져 왔다. 이분은 하루아침에 목돈을 만질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악착같이 일하면서 안 입고 안 쓰면서 저축을 해왔고 시장 한편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면서 오천원, 만원씩을 은행에 맡겼다. 스웨터를 짜고 구슬을 붙이고 우유 배달을 하는 등 고생도 적잖았다. 그러면서도 명절이면 홀로 사는 노인 분들에게 양말이며 내의를 선물하고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매달 식사를 대접했다는 뒷이야기에 마음이 더 따뜻해져 왔다.

    전 재산 300만원으로 시작했다는 노숙자를 위한 밥집, ‘민들레 국수집’도 그렇다. 6년째 이 밥집은 노숙자뿐 아니라 배고픈 사람은 언제 어느 때라도 와서 눈치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했다. 어느 신부님이 처음 시작은 했지만 이 밥집은 신부님 혼자 꾸려나가는 곳이 아니었다. 때마다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아니었다면, 말없이 쌀자루를 살짝 놓고 가는 얼굴 없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배고픈 삶을 지탱해야 하는 노숙자들은 추위에 더 많이 웅크러졌을 것이다.

    예수님이 살았던 것처럼 살아보고 싶었다는 그 신부님의 말씀이 제법 오래 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지붕이 뚫려 온몸으로 비를 맞아야만 하는 집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핑계처럼 가난하다고만 생각하고 가진 게 넉넉해야만 봉사를 할 자격이 있는 줄로만 생각해 왔던 것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큰 나무 아래에는 작은 나무가 제대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숲에는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을 가진 키 작은 나무들과, 산새들과 풀벌레들이 서로 어우러져야만 아름다운 숲이 이루어진다. 다람쥐가 숨긴 도토리 덕분에 참나무 숲은 더 많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선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소한 일에 분해하고, 어떡하면 내가 손해 보지 않을 것인지를 먼저 계산하고, 조그만 일에도 대가를 바라고, 유명인 등재부에 이름 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도 해가 갈수록 드러나지 않게 봉사하는 분들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적지 않은 분들의 선행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꾸어가는 것이다.

    짧은 비 한 차례 지날 때마다 더 추워지는 계절이다. 세상이 소란하고 시끄러울지라도 따뜻한 마음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의 훈훈한 이야기가 있기에 이 계절도 아름답게 꾸려 나가질 것 같다.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아름다운 자리를 지키는 세상의 이면에 박수 보내드린다.

    유행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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