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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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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문인 양산 시대- 이광수(경남문학관장)

  • 기사입력 : 2009-11-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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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내에는 경남문인협회에 입회한 문인 600여명과, 등단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문학동호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문인지망생을 합하면 어림잡아 1000여 명이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종 인쇄매체나 인터넷 같은 전자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글을 고정 기고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아 질 것이다. 한편 대의민주제의 확대에 따라 주민투표로 뽑는 선출직 인물의 양산시대를 맞아, 그들에게도 글쓰기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 되었다. 각종 인쇄매체로부터의 원고 청탁에서부터, 대내외 행사에서의 스피치나, 공식·비공식 모임에서의 짧은 멘트에 이르기까지, 요령 있게 말하기는 글쓰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평소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의 연습은 필수적이다.

    이처럼 글쓰기의 대중화, 일반화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반길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글쓰기의 일반화가 문인의 자질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게 문제다. 뒤늦게 자기개발을 위한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조급하게 시인이나 해필가가 되려고 욕심을 부린다. 더욱이 이런 현상을 이용해 별 볼일 없는 문학관련 잡지사가 장삿속으로 설익은 문인을 마구 쏟아낸다.

    1~2년 글쓰기 공부를 한 사람들이 어중이 떠중이 잡지사의 달콤한 부추김에 현혹되어 정식 추천형식마저 무시한 채, 신인상 당선이라는 미명하에 등단한다. 그러나 이렇게 등단한 사람들의 글에 대해 글줄깨나 쓴다는 문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글쓰기에 대한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혹평한다. 대개 한 잡지사에서 1년에 50여 명의 문인을 양산하고 있으니, 전국에 산재한 문예관련 회지나 잡지사를 통하여 배출되는 신인작가는 어림잡아도 1년에 수천명은 족히 될 것 같다. 물론 개중에는 중앙지의 신춘문예 당선작가에 버금가는 우수한 신인이 발굴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사례이다.

    또한 어느 유명작가가 관여하는 잡지사나, 유명문인이 이끌어 가는 단체의 문하생이라는 배경으로 어설프게 작가라는 명패를 달긴 했지만, 해당 단체의 기관지에 실린 글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고 수근거린다.

    미국의 인기작가 스티브 킹은 “좋은 글은 땅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했다. 땅속의 화석은 수천만년의 오랜 기간 동안에 생성된 것이다. 이처럼 작가도 오랜 기간 동안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하는 산고를 겪어야 함을 의미한다. 필자는 평소 많은 분들로부터 작품집을 선물받는다. 피나는 노력 끝에 어렵게 탄생시킨 자신의 작품집에 애착이 가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작가로 등단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풍조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필자가 무슨 자격으로 그분들의 작품을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겠는가. 좋은 작품과 작가는 오직 독자만이 판단할 뿐이다. 다만, 적어도 10여 년 정도 글쓰기 공부를 한 후에 등단이라는 과정을 밟는 게 문인이 되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가 그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기도취와 메타포 과잉의 시,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고 추상적인 애매모호한 표현들로 가득찬 사실묘사 위주의 수필, 매수만 채우면 되는 양 인생의 존재가치에 대한 갈등과 반전의 메시지가 없는, 묘사와 해설 위주의 소설,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 책과 작가가 과연 무슨 작가상, 무슨 작품집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중이 떠중이 문인의 양산에 대한 우려와 함께,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시와 수필과 소설이, 좋은 작품집과 작가로 평가받는 문단 풍토가 아쉽기만 하다.

    새해에는 문학인구의 저변 확대에 앞서, 문학의 정체성부터 올바르게 인식하는 자기성찰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광수(경남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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