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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26) ‘흙피리’ 오카리나 연주가 한태주씨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의 소리를 노래합니다

  • 기사입력 : 2009-1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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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태주씨가 함양군 서하면 거연정 앞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카리나를 불고 있다.



    지리산 자락 자신의 집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고 있는 한태주씨.

    계곡물을 타고 흐른다. 새소리가 화답하듯 지저귄다.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듣다 보니 오카리나 음만 연주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듣는 이의 마음도 따라 연주되고 있었다.

    12월 1일 오후 2시 오카리나 연주가 한태주(22)씨를 만난 건 계곡 위로 정자 하나가 놓여 있는 모습이 그림 같은 함양군 서하면의 거연정이다.

    그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오카리나를 꺼내 연주하기 시작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시네마 천국 등 몇몇 귀에 익은 곡과 그의 연주곡 ‘구름’ 등 여러 곡들을 끊임없이 연주하는 모습은 오카리나와 혼연일체가 된 것 같다.

    “가장 원시적인 악기지만 연주자의 혼을 담을 수 있는 악기죠.”

    그가 꺼내 보인 오카리나는 그의 말대로 정말 단순한 구조다. 주먹 크기만한 토기로 만든 관악기로,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것이 전부다. 초보자들에겐 음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태주씨가 오카리나를 처음 손에 쥔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아버지 친구분이 선물을 주겠다며 팬플룻과 오카리나를 건네며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오카리나의 모양에 호기심을 느낀 태주씨는 오카리나를 선택했다. 당시 아버지 한치영씨는 태주씨에게 “이제부턴 그건 너의 악기란다. 소중하게 다루거라”고 말했다.

    태주씨는 음악을 해야 하는 태생적인 운명을 타고난 듯했다. 아버지 한씨는 지난 1983년 제3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고 어머니 김경애씨는 건반연주자 1세대였다.

    태주씨는 어릴 때부터 지방 공연을 다니는 부모님을 따라 전국 곳곳을 다녔다. 지난 2002년 지리산 자락에 정착하기 전까지 전국 곳곳을 돌며 이사만 17번을 했을 정도다.

    “어릴 때 부모님이 지방 공연을 할 때면 공연 끝무렵에 제가 오카리나를 연주하곤 했어요.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매우 행복했죠.”

    당시만 해도 오카리나 관련 교육기관은 전무했고 있다고 해도 태주씨의 교육비가 넉넉한 상황도 아니었다. 소년은 오로지 자신의 연습으로 단련했다.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듣고 소리나는 대로 음으로 구현하려 했어요. 내 마음의 화성을 어떻게 하면 오카리나로 표현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했죠.”

    그가 누군가에게 연주 지도를 받은 것은 수년 전에 서울의 한 오카리나 클럽에 찾아가 일주일 정도 배운 게 전부다.

    태주씨는 당시 서울의 프리윈디라는 오카리나 클럽에 새 오카리나를 구할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는 오카리나를 구입할 돈이 없어 오카라나를 그냥 달라고 했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 오카리나를 유명한 악기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태주씨는 오카리나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태주씨가 열여덟 살일 때 1집 ‘하늘연못’을 시작으로 2집 ‘새소리’, 창작연주곡인 3집 ‘공간여행’까지 오카리나 연주 앨범도 냈다.

    바위 위에서 연주를 마친 태주씨는 지리산 자락에 마련된 집으로 안내했다.

    집 앞마당 공터에는 농구대가 보였다. 개인 농구장이다. 그는 집에서 부모님과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황토로 지은 집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태주씨는 손수 차를 준비해 왔다. 녹차의 단아한 맛을 느끼며 그의 얘기를 계속 들어봤다. 그의 말은 차분하면서도 또렷했고 거침이 없었다.

    태주씨는 음악 작업 이외에도 평소 농구와 수영 등 운동을 즐겨한다. 보통 아침 5~6시에 일어나 음악 작업에 몰두한 후 오후에는 자유롭게 생활하는 편이다.

    주로 가을과 겨울에는 음악 공부와 작업에 몰두하고 봄과 여름에는 국내외로 여행을 즐긴다. 그는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치열했다.

    △태주씨에게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은 광범위해서 뭐라고 정의할 수 없지만 음악은 우울한 마음, 서글픈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음악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생명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해 준다.

    나의 음악은 ‘항상 이것이다’고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것이고 싶다. 돈과 명예, 개인의 욕심 따위로 음악을 하지는 않는다.

    음악 작업을 할 때나 연주하는 동안 희열이 느껴진다. 음악에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연주에 몰입할 때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불안감은 없는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카리나를 연주하기 위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부모님은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 남들보다 무엇 한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또래 친구들은 ‘대학을 어딜 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지만 나는 음악에 대해 고민하고 표현하기를 좋아한 것뿐이다.

    혼자서 인내하며 공부하고 음악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남들처럼 제도권 안에서 공부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하지만 오히려 부모님이 격려해 주셨다. ‘네가 선택한 길을 가면 된다’고 하셨다.

    △음악 공부와 작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아버지의 조언이 가장 큰 힘이 된다. 아버지는 공부하는 방향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셨고 결국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대가들의 곡을 끊임없이 듣고 반복해서 카피했다. 그리고 기본이 되는 클래식을 연구했다.

    지난해 3집을 내고 난 후 음악에 대해 더욱 매진해 공부했다. 작곡 이론과 신시사이저, 기타 등 악기들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한동안 음악을 대할 때 어둡고 막연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설렌다.

    과거하고 다르게 요즘은 공부하기 쉬운 환경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지도하고 과제를 내주지만 결국 자기가 하고 느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집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방향만 잘 제시되면 공부하는 방법은 충분하다고 본다.

    음악 외에도 영어를 틈틈이 공부했다.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단계다. 일본어도 배우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음악 무대가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외국어는 필수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데 음악을 위해서인가

    -공연을 다니다 보니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지난 9월 9일부터 일본 사람들이 주축이 돼 한국 국토 순례를 시작했다. 강화도를 출발해 서해안을 돌아 임진각까지 합류해 같이 따라다녔다. 정말 즐거웠다. 덕분에 일본어도 많이 배웠다. 여행을 좋아한다.

    음악적 영감에도 도움이 되지만 딱히 일상의 탈출이나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어차피 삶 자체가 여행이지 않은가. 집에 있든 집을 떠나든 내 생활에서 차이는 없다. 집에 있어도 자유롭고 여행을 가든 친구를 만나든 자유로운 것은 똑같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오카리나 연주도 계속 매진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작곡을 겸비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 다양한 악기를 섭렵해 뮤지컬, 영화 음악 등 여러 장르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밴드를 구성할 생각이다. 자본에 의해 기획된 음악이 아니라 실력이 겸비된 음악으로 승부하고 싶다. 검증할 수 있는 창구는 많다고 본다. UCC 등 인터넷도 훌륭한 창구가 될 수 있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 같이 해보고 싶다.

    글=김용훈기자 yhkim@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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