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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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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풍수지리] 적선과 발복

신령한 기운인 생기 응집된 터에
집 짓거나 묘 쓰면 기에 감응받아

  • 기사입력 : 2010-02-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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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덕과 적선 베풀면 복 받게 돼

    풍수지리학이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신령한 기운인 생기가 최대한 응집된 장소나 터를 혈(穴)또는 명당(明堂)이라 하는데 이러한 혈(穴)을 찾는 것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전승 발전해 온 것을 말한다. 혈에다가 집을 짓거나 묘를 쓰게 되면 그 기에 감응을 받아서 그곳에 사는 사람이나 그 묘의 후손들이 복을 받아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일반적인 믿음 또는 대중적인 믿음을 풍수지리사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방마다 어느 고장마다 묏자리가 좋아서 발복을 받아 큰 인물과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 또는 집터가 좋아서 큰 인물이 났다는 이야기, 또는 묏자리가 흉해서 집안이 쫄딱 망했다고 하는 등 풍수와 얽힌 이야기를 일컬어서 풍수지리설이라 한다.

    풍수설의 어떤 부분은 오늘날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낡은 민간 신앙으로 떨어지고 말았지만, 그것의 성립 당초에는 가장 절실한,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이었다. 풍수는 지기를 흩어 버리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음으로써 왕성한 생기를 보전한다는 뜻이다.

    풍수지리설의 일례를 들면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영릉은 조선 왕조의 능제를 가장 충실하게 따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 비의 전면에는 ‘조선조 세종대왕 영릉 소헌왕후 부좌’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본래 여주 영릉의 자리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호는 풍애(楓崖)이며 우의정을 지냈던 이인손의 묘였으나 예종의 인간적인 호소에 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묘를 파서 유골을 들어내니 그 밑에 비기(秘記)가 나왔는데 그 내용인즉 “이 자리에서 연을 날리어 하늘 높이 오르거든 연줄을 끊어라. 그리고 연이 떨어지는 곳에 이 묘를 옮겨라”고 쓰여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그의 후손들은 “장례를 할 때 이미 이장(移葬)의 운명을 알았던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장한 곳은 지금의 여주군 능서면 신지리로 연주리라고도 하는데 연주리는 연줄이 떨어진 동네라는 뜻이다.

    어쨌든 세종대왕의 합장릉은 천하의 명당인 영릉으로 이장을 함으로써 조선의 국운이 100년 더 연장되었다고 하여 영릉가백년 (英陵加百年)이라 한다.

    그러나 이인손의 묘 또한 이장한 후에도 집안의 후손들이 번창하였으니 그곳도 ‘명당 터’였음은 틀림없다고 본다.

    다른 일례로는 고려 초기의 정치가이며 외교가로서,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자(字)는 염윤(廉允)으로 군의 최고 관직에 올랐으며 고려를 침공한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80만 대군을 외교적 수완으로 물러가도록 하였던 서희 장군의 집안에 얽힌 ‘사슴이 잡아준 명당’ 일화가 있다.

    신라 조정에서 서신일은 아간(阿干) 벼슬을 지내다 신라가 망하자 이천의 효양산에 들어가 소일을 하며 지냈는데 나이 80이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늘 근심을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사슴 한 마리가 화살이 등에 꽂힌 채 달려와 살려 달라는 시늉을 하여 불쌍히 여긴 그는 풀숲에 감춰 주었다. 잠시 후 뒤를 쫓아 달려온 사냥꾼이 사슴의 행방을 묻자 “본디 사슴이란 사람을 보면 피하는 짐승인데 어찌 알 수 있겠소”하며 사냥꾼을 따돌렸다. 사냥꾼이 멀리 가자 등에 박힌 화살을 뽑고 사슴을 정성껏 치료해 주니 사슴이 그의 옷깃을 물고 어디론가 인도하여 발로 한 곳의 흙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그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낮에 그대가 살려준 사슴이 나의 자식인데 살려준 보답으로 사슴이 인도하여 파헤친 곳에 조상의 묘를 옮기고 그대도 그곳에 묘를 쓰게 되면 대대로 자손들이 영달을 누릴 것”이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 이후 부인의 몸에 태기가 있어 나이 84살에 아들을 얻으니 그가 서필이고, 서필의 아들이 바로 거란군을 세 치 혀로 물리친 서희 장군이다.

    이러한 풍수 설화는 무수히 많은데 음덕(蔭德)과 적선(積善)을 베풀면 복을 받게 되며 조상의 묘를 길지(吉地)에 두어야 발복이 온다고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주재민(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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