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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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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한국 호랑이’ 복원해 ‘호랑이의 나라’ 명성 되살려야죠

  • 기사입력 : 2010-02-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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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가 그의 연구실에서 호랑이 두개골을 들어보이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언젠가는 한반도에 호랑이가 다시 살게 될 겁니다.”

    10년 전부터 한국호랑이 보전과 되살리기에 앞장선 서울대 이항(53·수의과대학) 교수를 지난 1월 말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수의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의 연구실에는 호랑이 두개골을 비롯해 호랑이 관련 각종 자료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교수가 호랑이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200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교수는 새천년이 시작되던 해 야생동물 보전과 관련된 연구를 시작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의 동물원과 야생동물 보전과 관련된 기관을 돌던 중 아시아 호랑이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이 의외로 크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호랑이의 생물학적 특징, 호랑이와 인간과의 역사적 관계, 멸종된 호랑이와 멸종되어 가는 호랑이, 멸종 원인, 실제 살아 있는 호랑이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과 보전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 매우 구체적인 교육이 가는 곳마다 시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호랑이가 수천 년간 살았고, 자타가 공인하는 호랑이의 나라라고 하는 우리는 어떤가, 한국 어린이와 학생은 한국 호랑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옛날에 그 많던 호랑이는 왜 어떻게 언제 누구에 의해 사라졌는지, 이들이 어디엔가 남아 있기는 한지, 또 다시 한반도에 살 가망은 없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던 중 서울대 수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실에 일본인 준페이 기무라 교수가 부임해 왔고, 그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 호랑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2008년엔 일본 국립박물관을 방문, 전시된 호랑이 두개골을 보고 반 년이 넘는 노력 끝에 호랑이 뼛가루 1g을 얻어 유전자 분석을 했으며, 그 결과 한국 호랑이와 유전자가 99% 일치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한국 호랑이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교수는 이후 국제학술대회와 한국호랑이 관련 서적 번역사업 등을 해왔고, 올해도 2월 9일 녹색연합 주최, 한국범보존기금의 주관으로 ‘한국범 복원의 길: 한국 호랑이와 한국 표범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갖는다.

    그는 호랑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되는 우리의 옛이야기와 호랑이와 범(조상들은 호랑이와 범을 암·수로 보았다고 한다)이 단골로 등장하는 민담이나 민속화, 88 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 등 우리 생활과 문화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수많은 호랑이를 그 예로 들었다.

    “전통 문화재인 숭례문이 불타 가슴 아파하며 복원하지만, 한국 호랑이야말로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 속에 살아 있는 중요한 문화이고 전통입니다. 그런데 호랑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뭘 가장 궁금해 하는지 아세요? ‘호랑이 하고 사자 하고 싸우면 누가 이기나’ 하는 것입니다. 또 언론에 한번씩 호랑이 흔적이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반짝 관심을 갖습니다.”

    그는 한국 호랑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엉뚱한 질문에 머물고, 한번씩 흥미 위주로 보도되다 이내 잊혀지고 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한국호랑이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 수천 년 살아온 한국 호랑이가 어떻게 해서 종적을 감추게 됐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엔도 키미오 저, 이은옥 옮김) 라는 책을 한 권 건넸다. (한국판은 이 교수의 의뢰로 출판됐고, 책 판매 대금의 10%는 한국범보존기금을 통해 극동러시아에 남아 있는 한국 호랑이와 한국 표범 보전을 위해 쓰인다.) 이미 24년 전 한 일본인이 한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멸종 과정을 추적한 이 책은, 조선 말까지만 해도 번성했던 한국 호랑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명줄이 끊긴 것은 일제시대이며, 일제는 식민지 백성을 해로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해수구제 정책을 펴며 대대적인 맹수사냥에 나섰으며 결국 1920년대에 호랑이는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 땅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자료에 의하면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잡힌 것은 1920년대이며, 북한에서는 1987년 자강도에서 잡힌 수컷호랑이가 마지막이다.

    그 이후,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된 호랑이 출몰 보도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의한 해프닝성 보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호랑이는 완전히 사라졌는가.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극동러시아 전체에 걸쳐 약 400~500마리의 한국 호랑이가 살고 있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서연해주 지역에도 10여 마리의 호랑이와 30여 마리 정도의 표범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남한에는 야생 호랑이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지만 북한과 접경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어느 정도 안정된 호랑이 개체군이 존재하며, 국경을 넘어 중국 훈춘지역에 일부가 출몰하며, 어떤 개체는 북한까지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러시아 땅에 살고 있는 호랑이 운명을 걱정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동러시아 연해주 지역은 과거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땅이었고, 한국 호랑이의 활동무대일 뿐 아니라 오랜 기간 한민족이 살던 곳입니다.”

    그는 호랑에게는 국경은 의미가 없고, 이곳에 호랑이가 번성하게 되면 중국과 북한 국경을 넘어 다시 백두산을 포함한 한반도로 유입될 수 있다고 했다. 연해주에 서식하는 호랑이는 앞으로 한반도에 호랑이 개체군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극동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무르 호랑이(한국 호랑이는 아무르 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며 유전자도 거의 일치한다)와 아무르 표범 보호단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야생동물국(FWS)과 영국의 환경식품농무성, 네덜란드의 환경농무성 같은 외국의 정부기관이 러시아의 호랑이 보전기구를 후원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내 나라 일이 아니라는 근시안적 태도를 버리고 호랑이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호랑이가 살았던 적이 전혀 없는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이 사라져가는 아무르 호랑이와 표범을 되살리기 위해 말과 관습이 전혀 다른 극동러시아에 자원해 와서 일하는데 적어도 그들보다는 우리가 호랑이 살리는 일에 더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호랑이의 부활을 꿈꾸는 이 교수는 직접 러시아 현지에서 아무르 호랑이를 살리는 활동에 헌신하는 사람 중에 한국의 젊은이도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상규기자 sklee@knnews.co.kr

     

    ☞이항 교수는 고향이 하동군 고전면 영교리라고 했다.

    이 교수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고, 초중고를 서울에서 나왔지만 어릴 적부터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해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나서 살던 하동으로 내려와 축산업을 했다.

    그는 하동으로 내려와(75~77년) 소를 키웠고, 이후 군대를 다녀와서도 뒤늦게 경상대학교 수의과에 입학하기 전까지(79~83년) 8년간 하동에 살면서 축산업을 했다.

    그는 남들보다 한참 늦은 대학 졸업과 함께 87년부터 93년까지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가 됐다.

    지방대학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에 임용된 비결을 묻자 그는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뒤늦게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사)천연기념물동물유전자원은행장, 서울대 수의과대학 생화학교수, 수의과학연구소 부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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