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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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논술수업] (13) 통합 독서논술- 내가 잘하는 것과 잘한 일은?

  • 기사입력 : 2010-04-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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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에게 신학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달이다.

    학교의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다 보니 이것저것 계획을 짜야 하고 조사해야 하고 작성해야 한다.

    그중에 빠뜨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담임 맡은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고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 일이 참 쉽지가 않다. 올해와 같이 이전에 수업을 하지 않은 새 학년을 맡으면 더욱 어렵다.

    아침 자습 시간을 이용해 상담을 해보지만 학급의 학생들을 모두 상담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부족해서 학생들의 내면을 알기란 쉽지가 않다.

    이런 까닭에 자주 활용하는 것이 자기소개하기이다. 그냥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하면 사는 곳에서부터 별명, 가족, 장점, 단점, 특기, 취미, 좋아하는 과목 등을 쭉 나열해서 쓴다. 이런 소개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학생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학생들의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주제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

    올해 신학기 들어 3월에 글쓰기를 두 번 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잘하는 것, 또는 잘한 일’에 대한 글쓰기다.

    이 주제를 제시한 까닭은 학생들의 자존감이 대체로 낮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높으면 보다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쓴 글을 보니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 중에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난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다’라고 글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이는 오로지 성적에만 집중하게 하고 서열을 매겨 100점을 받거나 1등을 하고도 불안해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하는 것으로 보내고도 자신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에는 대단히 큰 문제가 있는 셈이다.

    학생들에게 주제를 제시하면서 이런 말을 곁들였다.

    “이 주제를 제시한 까닭은 여러분의 자존감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성공적이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좀 더 커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또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다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마음도 강해지리라고 본다.”

    ☞ 학생 글 1.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잘하는 일이 꽤 있어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 지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쓰자면 내가 2학년 때보다 3학년으로 들어오고 난 뒤 수업태도가 더 좋아지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한다는 것, 또 좀 더 조용해진 것, 이것들 외에는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다.

    이건 다른 애들도 다 하는 것이지만 버스에서 한두 번 할머니 할아버지께 자리를 비켜준 일이 있다.(중략) 이렇게 쓰다 보니 나도 은근히 잘했던 게 있는 것 같다. 그럼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뭐일까? 난 만드는 걸 좋아하고 그냥 꽤 잘한다. 작년에 미술에서 만들기 할 때도 꽤 잘했고 미술학원 다닐 때 만든 것 중에 몇 개는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또 그냥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여 생활을 잘하는 것도 잘하는 것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잘 웃는다. 짜증 날 때는 웃지 않고 인상도 안 좋지만 그 외에는 최대한 많이 웃으려고 하고 또 많이 웃는다. 많이 웃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까 지금 내가 잘 하는 것 중에서 제일 나은 것 같다.

    그냥 억지라도 글을 쓰다 보니까 어느 정도 내가 잘했던 일이나 잘하고 있는 일이 꽤 있어 은근히 기분이 좋다.(중략)

    그런데 이렇게 계속 적다 보니 잘했던 일이 채워지고 좀 뿌듯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고 어쨌든 기분이 좋다. 이제부터는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을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쓸 수 있도록 봉사활동 같은 것도 많이 하고, 또 잘하는 것을 찾고 찾아서 열심히 해야겠다.

    ☞ 학생 글 2.   포기와 절망 겪은 나,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잘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은 비판하기,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잘했던 것은 모르겠다. 어릴 때에는 무슨 일이든지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세상에 물들어져 적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찾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는다.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아이들도 세상의 벽을 느끼고는 대부분 포기와 절망을 겪는다. 지금 절망과 포기를 겪은 나의 심정을 나타내자면 ‘젠장, 헐, 어떻게’이다. 진짜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돌겠다. 누구 하나 내 꿈을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만 하고 구체적인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지 않잖아. 황무지에서 비가 오지 않는 사막에 씨앗 몇 개 들고는 밤낮으로 땅을 갈고 뿌리고를 혼자서 해야 한다고…. 외롭다. 내가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조앤 K 롤링, 권정생 선생님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유명해질 수 있을까? 내 의견을 말하면 쌩 또라이라는 말을 듣는 내가 장편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앞이 하얘진다.

    지금 샘께서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이 글을 적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 정도 적어서 코딱지만한 자존감이 눈덩이처럼 커지진 않을 것 같다.(후략)

    ☞ 학생 글 3.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얘기를 잘 들어주기에 '심리치료사' 되는 게 꿈

    내가 잘하는 것? 잘했던 일? 사람들은 대부분 잘하는 것과 잘했던 일보다는 못하는 것과 못했던 일을 더 빠르게 또 쉽게 기억해낸다. 그러나 잘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알아가는 것이 지금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낮추게 되면 안 좋은 길로 빠질 수밖에 없다.

    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초등 4학년 때와 중1 때 크게 한 적이 있다. 그럴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고 날 그 늪에서 꺼내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나는 더 빨리 그 늪에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고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일일 수도, 또는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말이라는 것은 꽤 애매모호하니까. 어쩌면 내게 그런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내 꿈을 심리치료사로, 또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하고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후략)

    배종용(김해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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