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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품질명장서 산약초 전도사 된 손익출씨

“대한민국 품질명장 이어 이젠 ‘125살 건강명장’ 도전”

  • 기사입력 : 2010-06-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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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익출씨가 창원 한국폴리텍Ⅶ대학에서 강연에 앞서 책을 읽고 있다./전강용기자/

    사람마다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부모의 뜻에 따라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인생 여정을 겪으면서 자신만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명장, 산업지식인 1호, 대통령표창 수차례 수상, 한국표준협회 전임강사, 명강사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손익출(63)씨. 퇴직 후 지금은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탑정마을에서 산약초를 재배하며 인생 2막을 열어 가고 있다.

    그는 해방 전후에 태어나 보릿고개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죽도록 고생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죽을 것만 같던 인생

    손 명장은 경북 포항의 깡촌에서 태어나 굶주림을 밥먹듯이 하면서 급기야 7살께는 영양부족으로 다리를 쓸 수 없는 앉은뱅이가 되었다.

    배가 고파 뱀이나 개구리 등 닥치는 대로 잡아먹다 보니 몸에서 온갖 기생충이 생기고, 결핵까지 겹쳐, 어릴 적 기억은 병마에 시달린 것밖에는 없다고 한다.

    학교도 다닐 형편이 안돼 가족들과 고향을 떠나 지팡이를 짚은 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했던 손 명장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14살이 되던 무렵이다. 학교 다닐 나이가 한참 지나 뒤늦게 초등학교 4학년에 입학해 졸업한 것이 손 명장의 학력 전부다.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인근 마을에 머슴으로 팔려간 손 명장은 22살께 새로운 삶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머슴살이를 청산하고 대구로 도망가 라디오 수리를 배워주던 학원에서 청소해주고 잠을 자며 일을 배운다. 라디오 전파사에서 취업해 처음으로 취직이란 것을 해 보기도 했다.

    돈이 될까 해서 안 해본 일도 없다.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고, 제대 후에는 농사일을, 다시 대구로 내려가 양산공장에 취업하기도, 전화국에서 막노동을 하는 일용직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이미 결혼해 아이가 둘까지 있던 손 명장은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마음에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이 울산행이다.

    이때가 1976년. 하지만 배운 것이 없다 보니 취업도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 우연찮게 현대중공업 하도급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이 회사에서 손 명장은 고참한테 얻어맞으면서 어깨너머로 틈틈이 용접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훗날 인생 전환의 기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로는 쉽지 않은 기술이었고, 마침 80년 초반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 붐이 일면서 특수용접을 배워 사우디아라비아에 담수화 건설공사에 참여해 세계 6개국 특수용접 자격을 취득하고, 돈을 벌게 된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집도 한 채 마련하면서 이제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장담했지만 인생 새옹지마라 했던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가정이 파탄나면서 한순간에 집도, 직장도 모두 날아가고 남은 것은 7살, 4살 난 어린 두 아들뿐.

    막막한 현실 앞에 아이들을 데리고 강에 들어가 2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어려운 시기였다.

    말단 용접공에서 품질명장, 신지식인까지 인생역전

    다시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82년 무렵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에서 특수용접사를 모집했고, 손 명장이 입사를 하면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일한 것이 인정돼 입사 1년만에 수출유공자상을 받을 정도로 회사의 신임을 얻었다. 일이 풀리려고 했던가.

    때마침 회사는 회사발전방안으로 직원들에게 개선방안을 모집했고, 손 명장은 개선안이 채택될 경우 월급보다 많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하나둘씩 개선안을 제출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개선안은 자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게 되고, 부가적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진급과 품질관리 유공자상을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94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명장으로 선정되었고, 99년에는 김대중 정부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손 명장은 현장 용접에서 관리부서인 품질경영부로 자리를 옮겼고, 또다시 사업기획부로 옮겨 1만여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전체 개선활동을 총괄하는 기장으로 승진한다. 말단 용접공에서 기장까지, 현장직에서 승진할 수 있는 자리까지 모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손 명장의 성실성과 명장 이력은 퇴직 후에도 인정받아 2005년부터 4년간 회사에서 품질경영과 산업안전업무에 대해 책임을 맡았다.

    손 명장은 명강의로 유명하다. 95년부터 품질개선에 대해 한두 번 시작한 강연이 소문이 나면서 전국을 순회하는 명강사로 어떤 날은 하루 800여km를 운전하고 6시간을 강연하는 등 지금까지 연간 수백 회에 걸친 강연을 해왔고, 지금도 일주일에 1~2회씩 꾸준히 강연을 하고 있다.

    품질경영에 대한 것에서 자신의 삶의 궤적까지 곁들인 진솔한 그의 얘기는 인기 만점으로 그의 강연을 들으려 먼 걸음을 마다 않는 팬까지 있을 정도다.

    경북 포항 탑정마을 산약초 재배하우스에서 물냉이를 캐고 있는 손익출씨.

    인생 2막, 산약초 전도사

    요즘 손 명장은 산약초 전도사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데 재미를 붙였다.

    쇠를 만지며 돈을 벌고, 지식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건강을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에 어린 시절 머슴살이를 하던 경북 포항 탑정마을에 집과 땅을 사고 정착을 하게 된다.

    친환경 쌀도 재배하고, 감자나 고구마 농사도 지으면서, 먹고 살기 위해 억지 머슴을 살던 것이 아니라 내 땅 내 논에서 즐겁게 농사를 짓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건강을 위해 우연히 산약초 교육을 받고부터는 약용식품지도사로 변신해 고추냉이와 물냉이 등을 시험재배해 이웃에게 나눠주며 산약초 전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그의 변신에는 125살이 되는 2072년까지 살아야겠다는 그의 꿈 때문이기도 하다.

    손 명장의 가장 아픈 부분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이란 낙인은 번번이 취업길을 막았고, 2번의 명장 도전에서도 실패를 맛보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픔이 다소 허황돼 보이지만 125살까지 살아야겠다는 계획은 그의 의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의 계획대로 하면 2~3년 내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농업고등학교를 다닌 뒤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사가 되는 것이다. 계산대로라면 70대 중반이 넘으면 한의사 자격증을 따서 125살까지 남은 인생은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한평생을 마무리하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중등 검정고시에 실패해 자꾸 시간이 미뤄지고 있어 안타까워 했다.

    “인생이란 끊임없는 도전”

    그는 강연에서 자주 “이제는 학벌의 시대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인생의 길이 활짝 열릴 수 있는 시대”라고 경험담을 강조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25년이 걸리는 자리를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불과 13년 만에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고, 명장과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고의 명강사로 알려진 그만이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자랑이다.

    그런 그에게 인생이란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라고 말한다.

    손 명장은 품질의 정의에 대해 “자기가 하는 업무에 대해 뭔가 자꾸 바꾸어 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인정, 신뢰를 갖게 하는 하자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남은 인생을 산약초 재배에 도전하게 된 동기도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창원 한국폴리텍Ⅶ대학에서 최고경영자들을 상대로 열띤 강연을 하는 손 명장의 모습은 더 이상 영양실조로 앉은뱅이가 되었던 7살 소년도, 남의 집 머슴에 팔려가던 10대 청년도, 죽으려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30대 가장도 아니었다.

    나이 60대에 시작한 중등 검정고시에 합격해 농고를 졸업하고, 한의대를 졸업해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125살의 건강명장 손익출이었다.

    이현근기자 san@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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