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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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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경남보훈대상 선정

시상식 16일 오후 2시 창원컨벤션센터

  • 기사입력 : 2010-06-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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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한 용사 유상호

    ▲ 장한 유족 차종진

    ▲ 장한 미망인 원소임

    ▲ 장한 아내 장도연

    ▲ 특별 보훈 김형윤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경남신문사가 제정한 제25회 경남보훈대상 수상자 5명이 결정되었습니다.

    영예의 수상자는 △장한 용사 유상호(72) △장한 유족 차종진(59) △장한 미망인 원소임(77) △장한 아내 장도연(61) △특별보훈 김형윤(78)씨입니다. ★ 영광의 얼굴·공적 9면

    경남신문사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전몰군경과 애국지사 등 국가에 몸 바친 용사들과 상이용사, 그리고 이들을 내조한 배우자와 유족들의 자립 의지를 격려하고 돕기 위해 국가보훈처, 경남도와 함께 지난 86년부터 경남보훈대상을 시상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제25회 시상식은 오는 16일 오후 2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거행되며,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성품이 수여됩니다.

    ▲심사위원 : 위원장= 조용호(경남신문 상무이사) 위원= 박수조(경남도 보건복지여성국장) 홍인표(마산보훈지청장) 조성래(진주보훈지청장) 박정열(상이군경회 경남도지부장) 임현식(전몰군경유족회 경남도지부장) 최정희(전몰군경미망인회 경남도지부장) 김형갑(광복회 울산경남연합지부장) 박종길(무공수훈자회 경남도지부장)


    ■ 장한 용사 유상호씨 (창원시 용호동)

    군 복무 중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고 제대한 유상호(72·창원시 용호동)씨는 불굴의 노력으로 자립에 성공, 국가와 보훈단체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는 1962년 6월 11일 육군에 입대해 제20사단 62연대 근무 수행 중 대간첩 울막이 공사를 하다 지뢰 폭발로 인해 좌측 하퇴부에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에서 응급 진료 후 1965년 3월 명예 제대했다.

    공상군경 4급이라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향에 안착해 굳은 의지로 농사일에 전념해 오다 1979년 보훈지청의 농지 구입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사회 정착에 성공했으며 1990년부터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남모르게 도왔다.

    투철한 국가관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그는 회원들의 길·흉사에 참여해 위로·격려하는가 하면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해 1999년 민족통일창원시협의회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남북통일기금도 기탁해 통일과업 수행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주변의 고령회원을 찾아 위문품을 전달하고 소년소녀가장을 찾아 학자금을 지원하는 등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

    또 지난 2005년 보훈단체 회원들에게 무료로 태극기를 나눠 주고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웠다.

    그는 이런 공로로 경남도의장상을 받기도 했다.

    ■ 장한 유족 차종진씨 (창원시 반림동)

    차종진(59·창원시 반림동)씨는 6·25전쟁 중 숨진 차양호씨의 장남으로, 1951년 경남 김해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차씨의 어머니는 당시 궁핍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개가를 했으며, 차씨는 할머니의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차씨는 1969년 마산보훈지청의 도움으로 한일합섬에 취업해 10여 년간 성실히 근무해 오다 1978년 직장을 나와 자영사업인 개인택시를 직접 운전하며 경영해 왔다.

    그는 장애인 학생이 통학에 불편을 겪는 것을 보고 창원중학교와 마산 오동동 간 등굣길을 1년간 걸쳐 무임으로 등교시켜 온 것이 알려져 1980년 마산교육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으며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창원시 유자녀회 지회장을 역임, 유자녀회의 발전과 회원 친목 도모를 도왔다.

    또 1995년 한식날에는 회원들과 함께 창원 남산 충혼탑에 모셔져 있는 위패를 창원시와 마산시 위패로 분리 선별해 천도재를 모신 뒤 다시 현재 창원 삼동동 충혼탑으로 옮기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다했다.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어려운 생활고를 겪는 고령의 회원에게는 위로금을 틈틈이 전달한 그는 지난해에는 전몰군경유자녀회 중앙이사직과 경남지부 사무처장직을, 올해에는 전몰군경유족회 대의원에 선출돼 보훈 3단체 회원 화합과 위상 정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장한 미망인 원소임씨 (의령군 정곡면)

    6·25전쟁 당시 남편을 잃은 원소임(77·의령군 정곡면)씨는 돌이 지나지 않은 딸과 고령의 시부모를 봉양하는 힘겨운 삶 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미망인회의 유대 강화와 친목을 위해 앞장섰다.

    1950년 원씨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남편이 전사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은 뒤 무너지는 마음이 들었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에 더욱 쇠약해진 시부모를 돌보며 이를 악물고 생활했다.

    젊은 나이에 어렵게 생활하는 원씨에게 주위에선 개가를 권유했으나 남편에 대한 존경과 애틋함에 이를 마다하고 이웃의 허드렛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아픔은 컸다. 아들의 전사로 충격을 받은 시어머니가 정신을 잃어 3년간 병간호를 했으나 끝내 돌아가셨고, 40년간 모시던 시아버지도 중풍으로 쓰러져 5년간 대소변을 못 가렸다.

    눈물겨운 살림살이에도 어린 딸을 함안중학교까지 졸업시켜 자녀 교육에 이바지해 본받아야 할 어머니상으로 주변의 칭송까지 들었다.

    원씨는 주변의 독거노인 가구를 방문해 밑반찬과 생필품을 챙기고, 행상으로 힘겹게 모은 돈으로 산 문구를 소년소녀가장에게 전달해, 어려운 사람이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 더욱 각별함을 몸소 실천하는가 하면, 전몰군경미망인회 경남지부 의령군지회장을 10년간 맡으며 애국활동도 펼치고 있다.

    ■ 장한 아내 장도연씨 (사천시 벌리동)

    1969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눈을 다치고 제대한 임헌재씨와 1972년 결혼한 장도연(61·사천시 벌리동)씨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이웃의 귀감이 돼 국가유공자의 명예 선양에 기여했다.

    캄탕 지역 전투에서 눈을 다친 남편과 결혼해 2남1녀의 자녀를 둔 장씨는 여자의 몸으로 세상에 맞서기가 힘들었지만 굴하지 않고 주유소를 운영하며 여성사업가로 당당히 생활, 남편과 자녀 양육에 헌신했다.

    특히 국가유공자의 자녀라면 많이 배우고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자녀들에게 평소 가르쳤고, 이에 세 자녀 모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나와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했다.

    그는 집안의 맏며느리로 현재 팔순이 넘은 노모를 봉양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으며, 남편이 전쟁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할 때나 사회적 편견으로 힘들 때 제 몸처럼 괴로워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웃으면서 전상군경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노력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힘도 없었지만 나보다 못 가진 자에 비하면 나는 행복하다는 신념으로 주위의 이웃에 많은 관심을 뒀으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초·중학교 동창회 기수회장과 부회장, 한국부인회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나눔의 즐거움을 실천하고 국가유공자의 아내로서 명예를 드높였다.

    ■ 특별 보훈 김형윤씨(마산시 오동동)

    1950년 해군 입대 이후 1982년까지 32년간 해군에 몸 담아 국토방위에 전력을 다한 김형윤(78·마산시 오동동)씨.

    6·25전쟁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해군에 입대한 김씨는 1952년 10월 군함에서 바다를 방어하던 중 서해 최북단 남포항 해병대 진지에 북한군이 기습공격해오자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격퇴시킨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1978년 함대 사령관의 방어전에 소요되는 연안 기동함대 함수, 미이동급유장치 설치를 연구하라는 지시에 유조함 AO-3ka에 급유시설을 설치한 공로로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실장을 맡아 섬 주민 긴급 수송 등 주민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다했다. 1999년부터 무공수훈자회 마산시지회 사무장과 지회장을 역임하면서 투철한 봉사정신과 리더십으로 회원 단합을 이끌어냈고, 숙원사업인 무공수훈자 전공비 재정비사업을 성사시켜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그는 국가유공자 장례행사를 전 회원 스스로 참여하도록 해 유공자 위상 제고와 유족 자긍심 고취에 앞장섰으며, 경제사정이 어려운 국가유공자를 위해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등 불우한 이웃과 함께하려는 소박한 심성으로 살아왔다.

    생활고를 겪고 있는 회원들에게 120여 차례에 걸쳐 위로 격려한 공로로 2001년 마산시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정리=김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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