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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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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사이를 위하여- 이서린(시인)

  • 기사입력 : 2010-06-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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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잠을 잤다. 아뿔싸, 아침 6시17분 창원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란 이미 늦었다. 후다닥 씻고 환승역인 밀양역으로 향한다. 국도를 따라서 밀양역에 도착하니 7시. 7시15분 조치원행 기차를 타기까지는 15분이나 여유가 있다. 조치원역, 혹은 조치원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처음이다.

    낯선 곳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잠을 설치다 깬 아침. 그제서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을 느낀다.

    커피자판기를 찾아 동전을 넣는다. 요즘은 원두커피를 파는 자판기도 있어서 무척 반갑다. 버튼을 눌러 바로 갈아 나온 원두의 맛과 향기를 즐긴다. 종이컵에 반쯤 담긴 커피를 천천히 빈속에 흘려 넣으며 하루 동안의 여행을 생각한다. 오전 일곱 시의 역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 커피 마시기에 딱 좋다. 커피를 다 마실 때쯤 기차가 역내로 들어온다. 기차표를 다시 확인하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한국도서관협회 워크숍에 참석하는 길. 도서관에 파견된 작가와 그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도서관 직원들이 모여 정책에 대한 방향과 사례를 발표하고, 강연과 공연 등이 꽉 짜여져 있는 당일 행사이다. 충청북도 청원군에 위치한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열리는 워크숍에 파견 작가 사례발표를 부탁받고 가는,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

    전국의 도서관 관계자와 작가들이 모이는 날이라 기차 안에는 그에 관계되는 이들이 많이 탄 듯하다. 나는 창원도서관 소속 직원과 함께 앉아 모처럼의 기차여행을 즐긴다.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조치원역은 생각보다 컸다. 미리 대기하고 있는 행사용 셔틀버스를 타고 드디어 한국교원대학교에 도착. 접수를 하고 이름표를 받고 시간 시간 짜여져 있는 순서대로 움직이고 밥 먹고 발표하고. 도서관과 작가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강연과 작은 공연이 이어졌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4시 반. 셔틀버스를 타고 조치원역으로 이동하여 오후 5시37분 창원행 기차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신다. 역내에 있는 대기실에 앉아 저마다 볼일이 있어 기차를 기다리는 낯선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꽤 괜찮다.

    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생각해 본다. 결국 사람이 사는 일이란 소통과 관련된 일이라고.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필수이고, 스마트폰이 진화하고 e-book이 나오는 요즘. 가만히 집안에 앉아서 쇼핑을 하고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고 언제 어디서나 이동 중에도, 휴대폰이나 MP3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결국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어져야 사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전자신문을 읽고 전자우편을 사용하고 전자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종이의 문화를 걱정했다. 하지만 우려만큼 종이의 힘이 사라지진 않았다고 본다. 인터넷으로 다운 받거나 구매하여 읽는 전자책이 나와도, 사람들은 여전히 도서관에 나와서 책을 읽고 강좌를 듣고 공부를 한다.

    책을 빌리러 가거나 공부를 하거나 강의를 듣기 위해 도서관 가는 길. 그 길은 그냥 단순한 집과 도서관 사이의 길이 아니다. 집을 나서면 햇빛과 바람을 몸으로 느끼고, 길가에 핀 작은 꽃도 보고, 엄마 따라 도서관에 온 아이의 웃음과 집중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서관 사서와 이야기도 나누고 오래된 책의 향기도 맡을 수 있어 좋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에서 오는 소통을 느끼며, 더불어 산다는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편리하지만 인간을 혼자 두게 하는 전자 세상은, 조금 사이를 두고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도서관협회 워크숍에 참석했다 돌아가는 길, 차창에 걸린 저녁 해가 붉다.

    이서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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