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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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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장복만 부산 동원개발 회장

공납금 못내 벌서던 소년… 이제는 큰돈 벌어 사회에 환원하는 큰손

  • 기사입력 : 2010-06-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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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원개발 장복만(가운데) 회장이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직원들과 주변시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우리나라 선진화 수준 중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부문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프랑스어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명예만큼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최근 드라마로 방영된 거상 김만덕이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부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소위 부자들 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통영의 한 벽촌마을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을 딛고 부산지역 건설업계를 이끌고 있는 동원개발 장복만(69) 회장을 만났다.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과연 ‘부자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을 품고서 말이다.

    단독 사옥이 아니라 오피스텔의 3개 층을 빌려 사옥 대신 사용하는 (주)동원개발. 8층 회장실은 소파와 책상만으로도 좁아 보였다.

    386기종쯤으로 보이는 오래된 컴퓨터, 깨끗하긴 하지만 낡은 소파와 책상, 손님을 위해 내놓는 찻잔세트마저 검소하기 그지없다. 3D LED TV가 나오는 세상이지만 회장실 한쪽의 텔레비전은 앞뒤가 두꺼운 구형 중의 구형이다.

    종심(從心: 70세)을 바라보는 나이건만 장 회장은 강건해 보였다.

    말쑥한 차림이었지만 입고 있는 드레스셔츠와 양복 모두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회장실의 풍경이 아니더라도 그의 검소한 옷차림새만 봐도 첫인상은 ‘자린고비’ 딱 그것이었다.

    가난의 기억

    장 회장이 태어난 곳은 통영시 광도면의 벽촌 갯마을이다.

    “해방 전후로 가난했습니다. 가난한 시절 제가 살던 마을은 더 가난한 어촌마을이었죠. 그때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으로 곧장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통영상고(지금의 통영제일고)를 졸업했다.

    소년 장복만은 학교 다니던 내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수업시간에 교실 뒤에 나가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일이 잦았다.

    “사립학교인데 공납금 늦게 냈다고 손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죄인처럼 고개 푹 숙이고 손들고 있었던 일은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협력업체 돈 떼먹는 것은 죄악이다”

    군 제대 후 동기생과의 인연으로 아무 연고도 없던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첫 직장은 철강회사. 7년간 다녔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71년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장사를 했다.

    철재 소매상을 하게 됐고, 자연스레 주택보급에 눈을 뜨게 돼 75년부터 본격적으로 주택건설사업에 진출했다.

    그가 처음 지은 집이 산비탈 언덕이었다. 그 집이 동향이라 회사이름을 ‘동원(東園)’으로 지었다.

    지난 3월 31일 동원개발은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그와 함께 70년대 창업했던 주택건설사업자는 모두 문을 닫았지만, 동원개발은 창업 이후 단 한 번도 부도를 내지 않은 탄탄한 회사로 성장했다. 그동안 동원개발이 건축한 아파트만도 3만8000여 가구에 이른다.

    지난 89년에는 통영수산, 91년 통영산업 등 수산회사를 설립했고, 앞서 82년에는 경남제일저축은행을 설립했다.

    무일푼이었던 그가 많은 회사를 일구게 된 것은 동업의 힘이 있었다. 처음 건설업을 시작할 때부터 10년간 10여 명의 동업자와 50여 차례에 걸쳐 동업을 하면서 탄탄한 기초를 쌓았다.

    철재상 시절 돈을 빌려 물건을 사고, 낮에 팔아 저녁에 돈을 갚았기 때문에 신뢰를 쌓았고,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그는 “건강한 기업이 경영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죄”라며 “협력업체 돈 떼먹는 것도 죄악”이라고 강조했다.

    돈 버는 것에서부터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인재 양성 쓰는 돈 아깝지 않다”

    이렇게 스스로의 땀과 노력으로만 돈을 벌었던 장 회장이기에 구두쇠가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내 손으로 종이 한 장 갖다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직원들이 이면지 안 쓰는 것도 거슬리죠.”

    그런 그가 모교인 통영제일고 학사 신축 공사비 300억원을 쾌척했다. 법인 출연금이지만 사실상 그의 사재다.

    종이 한 장도 아까워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300억원은 어마어마한 돈일 것이다.

    그는 중학교에 제때 입학하지 못한 것 외에도 배움에 대한 한을 늘 갖고 있었다.

    첫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야간대학을 다녔다. 동아대학교 법학과.

    “밑바닥에서 성장하다 보니 법 공부를 하면 고단한 삶이 나아질 것 같아서였죠. 그나마도 학비가 없어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94년 양산대학을 인수할 때였다. 기업을 키우기 위해 공장을 하나 살 것인가, 대학을 인수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 모두 대학 인수에 반대했다.

    “배우지 못한 한도 있고, 죽고 나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했더니 답이 나왔죠. 당시 160억원을 들여 대학을 인수했습니다.”

    2000년에는 자신의 모교인 통영제일고 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통영제일고는 50년, 통영동중은 47년에 개교해 올해로 60년을 넘겼다.

    그는 낡은 학사가 안타까웠다. 새로운 부지에 새로 학교건물을 짓기로 했다. 지난 4월 신축 기공식이 열렸다.

    통영제일고는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통영동중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신축된다.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 일대 12만8139㎡ 부지에 건축면적 7601㎡, 연면적 2만6146㎡ 규모다.

    “학교 다닐 때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지 않았습니다. 진학의 길을 열어준 것도 아니고,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죠.”

    그 자신이 배움의 한을 갖고 있기에 학교 교사들에게도 한 가지를 강조한다.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많이 들어주라고 얘기합니다. 조금만 얘기를 나누면 아이들이 바로 설 수 있어요. 그게 중요합니다.”

    부자의 자격

    인재 양성에 거금도 아끼지 않는 그에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단다.

    “나를 성장시켜준 사회에 보은을 해야 합니다. 나의 고향인 통영, 나의 삶의 터전인 부산에 무언가 기념비적인 것을 하나 만들어놓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합니다.”

    그는 미국의 카네기홀, 록펠러재단처럼 부자들이 남기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부자들도 많았고, 성공한 사람도 많았지만 무엇을 남기고 갔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기업인은 기업경영을 건실히 해야 하고, 남으면 사회에 보답해야 합니다.”

    ‘마지막 꿈’을 말하는 장 회장의 눈은 빛이 났고, 입에는 웃음기가 감돌았다.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수많은 서민들을 울린 재벌들이 종국에는 휠체어 탄 모습으로 법적인 용서를 받고, 거금을 사회에 환원한다 하고는 흐지부지되는 현실이다.

    ‘부자의 자격’을 가진 이들이 이 사회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장복만 회장= 1942년 통영 광도면 출생. 통영상고(현 통영제일고) 졸업, 동아대 법학과(수료), 경남대 명예 교육학 박사, (주)동원개발 대표이사 회장, (주)통영수산 및 통영산업 회장, (주)경남제일상호저축은행 회장, 동원교육재단 양산대학 이사장, 재단법인 동원문화장학재단 이사장, 동원송촌학당 재단이사장, 금탑산업훈장 수훈(1995년),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2002년), 제43회 납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2010년)

    글=차상호기자 cha83@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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