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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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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눈물가꾸기- 서성자(시인)

  • 기사입력 : 2010-07-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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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고 울고 환호했던 2010년 우리의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만족과 아쉬움이 함께 있었지만 성적을 포함한 경기 내용은 차치하고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선수들의 눈물이었다. 그것으로 모든 아픔은 눈 녹듯 사라지고 다음 월드컵에서의 희망을 얘기하며 우리 모두 하나로 따뜻해졌다.

    이처럼 눈물은 힘이 세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눈물 한 방(?)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거나 일이 해결되기도 한다. 때론 이성적이지 않느니, 위선이니 하며 진의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눈물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순하게 만든다. 비록 눈물 뒤에 어떤 저의가 숨어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이었고 서로 통한 것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잘 우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연약해서 말랑말랑한 울음을 잘 터뜨리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 앞에선 쉽게 허리띠를 풀고 웃고 울고 떠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언제부턴가 눈물이 귀해졌다. 눈물을 감추고 모두 무뚝뚝하게 앞만 본다. 찔끔거리며 살다간 언제 도태될지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삶 속에서 남의 감정을 읽고 눈물을 위로한다는 건 사치스런 연민일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눈물이 많은 남자를 얼마나 덜 되고 나약한 사람으로 치부하는가? 적자생존의 질서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눈물은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의 자기변명으로 판단한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학교에서 눈물이 많은 아이는 ‘만만한 아이’쯤으로 불리고 놀림감이 된다. 강한 자를 부러워하고 강한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울면 안 된다고 배워 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오래된 영화 한 편을 보고 느낌을 이야기하는 수업을 했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본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서로 얘기하기로 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별로 느낌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두 번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데 참았다고 한 아이도 있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하는 아이도 있었다. 엄마만 울었다거나 몇 번 눈물이 났다고 한 아이는 10%도 되지 않았다. 세대차이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왠지 씁쓸했다. 아이들은 되레 눈물이 났다고 한 아이에게 이상하다며 놀리기까지 했다. 그래 그럴 법도 하다. 감성보다 이성의 합리성을 빨리 작동시켜 정답을 먼저 찾아야 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한 감성의 줄기는 가꿀 여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기사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의과 기술은 세계적으로 주목 받을 만큼 우수한데 왜 노벨상은 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 글이었다. 몇 가지 이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사회풍토에 관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감정의 노출을 꺼리는 사회에서 아름다운 것, 슬픈 것을 보고도 교감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기술에 의한 성과에만 매달려 두뇌를 계발하는 데 전념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에 기인한다고 했다. 외국인이 한 말이라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개인적인 견해일 뿐으로 넘기고 싶었지만 공감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얼마 전부터 ‘웃음치료사’라는 직업도 생겼다. 사회가 어두워져 웃음도 잃고 건강도 잃었으니 되찾아야 한다고 박수 치며 억지로라도 웃는다. 참 좋은 일이다. 눈물도 마찬가지다. 실컷 웃다 보면 눈물이 흐르기도 하지만 정말 기쁜 일에는 울음이 먼저 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삶에는 웃을 일, 울 일이 함께 뭉쳐 있는 것이다.

    다시 월드컵을 떠올린다. 차두리의 눈물은 그가 ‘인간다운 인간’임을 증명했고, 정대세의 눈물은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을 갖게 했다. 굳이 눈물의 종류는 구분 짓지 말도록 하자. 주변의 모든 삶에 슬쩍 끼어들어 감성의 씨앗을 가득 뿌리고 가꾸어 눈물샘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서성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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