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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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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 말, 아이들을 키우는 말- 김진희(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0-07-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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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가 지나자, 여름은 제철을 맞은 듯 더위가 한창이다. 작은 텃밭에는 고추며 오이, 가지가 주렁주렁 달려 지주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열매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지난해 콩밭에서 벌레에게 얼마나 물렸는지 올해는 콩을 심지 않았다. 하지만 갓 따온 오이, 풋고추를 씻어 먹는 맛이란 마트에서 산 유기농품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교실 창가의 재배상자에 심은 토마토를 보고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맛을 보아야 한다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아직 풋내가 솔솔 나는 토마토며 고추는 바로 우리 아이들과 무엇이 다르랴.

    등굣길, 잠이 덜 깬 눈으로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재잘대는 개구쟁이들은 이슬 머금은 내 텃밭의 모습이다. 한더위에 축 늘어진 나의 텃밭에 시원한 칭찬 한 바가지 뿌리면 시무룩한 아이들의 눈은 금방 반짝반짝 빛이 난다.

    사랑을 받은 열매들은 살이 올라 토실토실 여물어가는 모습이 예쁘다. 어깨 한번 쓰다듬어 주어도 고맙다고 머리 숙여 인사하는 예의바른 어린이들이다. 잘한다고 칭찬하면 어깨까지 으쓱대는 모습이 귀엽다.

    아! 그런데 이 예쁜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면 감당하기 어렵고 버겁기만 할까?

    칭찬은 물론 작은 선물 공세에도 못들은 척, 관심 없는 척한다. 선생이 하는 말은 의례히 하는 말로 치부하고 수업시간과 놀 때의 행동은 완전히 딴판이다.

    학교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에게는 전보 점수에 업무를 줄이는 등 다양한 혜택을 주어도 희망자가 없다고 한다. 4~5학년쯤 되면 벌써 사춘기의 이상행동을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거침없이 함부로 쏟아내는 말에 문제가 있다.

    충동적이고 의사 표현이 당당한 아이들은 해가 갈수록 언어 또한 거칠고 욕설을 쉽게 내뱉는다. 예쁜 여자 아이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올 때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모 대학 여학생의 욕설이 사건화되어 인터넷을 달구었다. 당시에 청소년이 쓰는 욕에 중독된 현실에 대하여 보도된 것을 보았다.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통해서 욕을 알게 되며, 부모가 혼낼 때 욕을 배워 그 전이가 엄청나게 빠르다. 또 욕설을 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상쾌함마저 갖는다’고 하니….

    욕에 대한 불감증이 초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화가 나도 아이들 앞에서는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무심코 던지는 험한 말이나 욕설을 삼가야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힘을 얻고 큰 용기를 갖는 아이들이다. 의사 표현이 좀 서툴러도 아이들에게 정감 있게 다가가자. 마음과 마음을 전해 보자.

    신나게 놀았던지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오늘 시 한 편 한번 외워 볼까?” 해맑은 아이들은 물줄기를 타고 오르는 식물처럼 환한 얼굴로 작은 입을 벙긋거린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 나도 정말 행복해서 /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이해인 ‘나를 키우는 말’)

    김진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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