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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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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독자가 진정 아름다운 문학인이다- 김문주(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0-07-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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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몇몇 초등학교에서 독서 교육의 한 행사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지자는 연락이 왔다. 평소에 워낙 말주변이 없고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터라 부담스러웠지만, 아이들과의 소박한 만남이라 고맙게 생각하고 응하였다. 행사를 요청한 학교가 대부분 시골 학교라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아이들도 순수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읽은 책의 작가를 만난다고 아이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별로 입담이 없는 나는 주로 책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작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돈 많이 벌어요?”

    “작가들 월급이 얼마예요?”

    아이들을 위한 책 대여섯 권을 출판했지만, 나는 글을 써서 제법 돈을 버는 작가는 못 되었다. 그런 질문을 받고 처음에는 대답하기 부끄러운 듯 가벼운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러면 아이들 뒤편에 앉아 있는 선생님이나 학부모도 소리 없이 따라 웃었다. 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 몇몇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월급 받는 사람들보다 돈을 적게 번다고 돌려서 말했다. 그쯤에서 끝나면 좋겠는데 꼭 질문을 더 끌고 가는 아이가 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얼마 벌었어요?”

    이쯤 되면 대답할 말이 별로 없다. 별로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고 대충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다. 세상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려는 아이들의 생각을 꼬집을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작가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일 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 아이들과의 만남이 어떠했는가 돌이켜 본다. 아이들의 기대에 좀 더 부응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진다. 그리고 아이들의 말처럼 월급을 받지도 못하는데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내 자신을 돌아본다. 글재주가 있음에도 경제적 여건 때문에 글쟁이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 어느 길을 가든지 한 가지를 위해서 또 다른 한 길은 접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글쟁이란 참 재미없고 실속 없는 직업이다. 창작보다는 그저 즐기는 차원에서 문학에 접근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문학을 향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지만 직접 글을 쓰는 일은 늘 고통이 따른다.

    이런 생각의 끝에는 꼭 어머니가 떠오른다. 친정어머니는 학창 시절부터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내가 중3 때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고, 어머니는 안 해본 장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발이 아프다며 주무르고 계셨다.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더니, 시내버스비가 없어서 버스 정류장 열 코스 정도 거리를 걸어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눈물이 나와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울었다. 잠시 후, 혹시나 어머니가 울고 계신 건 아닌가 싶어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어머니는 평소에 아끼던 옛날 공책을 꺼내 들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시를 읊고 계셨다.

    “내 사랑아 내 누나야 생각해보라 / 그 나라에 가서 같이 사는 즐거움을 / 조용히 사랑하고 / 조용히 죽으리니 / 너를 닮은 그 나라에서….”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시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시에서 삶의 위안을 받았다.

    지금도 어머니는 늘 책을 읽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간혹 젊은 사람들에게 해줄 만한 말을 찾기 위해 책을 뒤적이시곤 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품위 있게 만드는 모습은 문학을 즐기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여름방학 동안 부지런히 책을 읽는 것이 더위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더위 때문에 짜증이 나는 요즘, 더위를 물리치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만큼 보람 있는 휴가도 없을 것이다. 글이 써지지 않아 더운 여름에 머리가 더 뜨거워지는 작가보다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품위도 높이고 삶을 적당하게 향유하는 독자가 진정 아름다운 문학인이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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