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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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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의 가치, 글의 가치- 양 곡(시인)

  • 기사입력 : 2010-08-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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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일, 낮에는 찜통, 저녁에는 열대야다. 차를 끌고 나가면 도로가 막힌다. 나서는 길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가고 있는 모양이다. 차를 두고 걸어서 길을 나서면 햇살이 뜨거워 몇 발짝을 안 걸어서 숨이 턱턱 막힌다.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여름휴가도 없이 낮 동안 더위와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밤이 와도 잠조차 이룰 수가 없다. 고작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는 보통사람들은 이래저래 밤이나 낮이나 이런 더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옛말에, 없는 사람 살기는 그래도 여름이 낫다고 했는데, 없는 사람은 이제 겨울보다도 여름이 더 견디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지역문단에 발을 들인 지가 20년이 넘었지만, 어른들을 모시고 후배들을 보듬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데는 아직도 서투르다. 문학한다는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가끔 문학 바깥의 지인을 만나면 핀잔을 듣기도 한다. 뭐가 어떤데? 하고 눙치지만, 인사로 받는 말치고는 마음이 아리다.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문인들은 다투어서도 안 되고, 돈 이야기를 꺼내서도 안 되는 신선쯤으로나 자리해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여느 단체나 집단처럼 사는 사람들이 문학하는 사람들이다.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작품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 역시 일반 사람과 똑같다. 더 어려운 경우에 처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혼자만의 문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중앙으로 집중 집적되고, 모든 것이 상품의 효용가치로 계량화되는 마당에 가치혁신을 일으키는 작품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한, 그 문인은 생활에서 뒤질 뿐이다. 요샛말로 루저인 것이다.

    직업을 반듯하게 가진 사람들은 그래도 글을 못 쓰겠다는 소리는 안 한다. 글을 쓰려면 아니 글을 제대로 쓰려고 하면 기본적으로 구색은 갖추어서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인 생활에서부터 삶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의 글은 사치품이 된다. 다달이 내야 할 공과금과 생활비 정도는 벌어야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여의치가 않다.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일을 하고, 더 하려 해도 다달이 지출해야 할 만큼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곧 하루에 얼마의 빚을 지는 일이고, 결국은 무능력자라는 죄의식 때문에 글을 쓰는 일조차 허위의식이 되는 것이다.

    공부를 할 때는, 글쟁이가 된다면 예술작품이 아니면 그 어떤 글도 쓰지 않는 것이 문학정신을 지키는 데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정신을 온전히 지키려면 이러한 각오쯤은 있어야겠다고 지금도 믿고 있지만,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도 세상도 항상 다르게 흘러간다.

    살아가면서 볼트 하나 너트 하나 못 한 개를 우리가 돈을 주고 사듯이 어떤 종류의 글이든 말이든 낱말 하나하나마다 번역료처럼 돈으로 계산을 해서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없을까?

    어느 날 마을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아무개가 객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에게 전할 편지 한 통을 써달라기에 주인은 아침내 먹을 갈아 정성 들여 붓으로 써주었더니, 고맙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끝내버리더라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그 시간에 거름을 져 날랐으면 몇 짐은 날랐을 것이고, 소꼴을 베어도 몇 짐은 베었을 시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신분의 차이를 배우기도 했지만, 글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며 살아왔다.

    말의 가치 글의 가치는 하루 이틀 만에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글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늘 주인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주인처럼 살아야 하는 것만도 오늘날의 삶은 아닌 것 같다.

    양 곡(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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