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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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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붕어빵 아이스크림- 정이식(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0-08-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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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이라지만 너무도 덥다. 조금 걸었는데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갈증이나 면하려고 슈퍼에 들러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한 개 샀다. 붕어빵 아이스크림은 주전부리를 별로 않는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기호식품이다. 1200원을 주었다.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정확하지 않지만 작년에 700원을 하였지 싶은데 올라도 너무 올랐다. 이 돈이면 좀 쪼잔한 생각 같지만 김밥 한 줄을 살 수 있고. 그러면 없는 살림에 한 끼는 너끈히 해결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씩씩아, 너 거기서 뭐하냐?” 큰길로 내려오다 전봇대 옆에 서 있는 씩씩이를 만났다. 씩씩이는 지적장애아이다. 얼마 전까지 우리 동네에 살았는데. 몸은 18세이지만 정신은 6세에 머물러 있는 아주 착한 아이이다. 씩씩이는, 씩씩하게 자라라며 이웃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 아이를 보면 언제나 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떠올린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씩씩이는 더 커서도 순박한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씩씩이의 엄마는 시내 식당에서 일을 한다. 이맘때면 퇴근하고 돌아오는, 엄마 마중을 나와서 저러고 서 있는가 보다.

    “덥지? 이거 먹어라. 시원할 거야.” 어쩔까 망설이다가 큰 선심을 쓰듯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씩씩이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냉큼 잘도 받는다. 돌아서 가며 주머니를 뒤졌다. 없다. 붕어빵 한 개 더 살 여유조차 없는 언제나 빈곤한 내 호주머니이다. ‘쩝’ 헛입맛만 다셨다. 그러나 기분은 상쾌했다. 볼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그때까지도 씩씩이는 전봇대에 기댄 채로 서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서 씩씩이가 사는 산동네로 드는 골목길엔 어두움이 쫙 하니 깔려 있었다.

    “씩씩아, 엄마 아직 안 왔냐?” 바라보는 씩씩이의 눈에는 주먹만 한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고여 있다. “네.” 대답하는 목소리에도 기운이 하나도 안 비친다. 엄마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매우 슬픈 모양이었다.

    “어? 그것 ….” 잽싸게 두 손을 뒤로 돌리며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씩씩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어, 어,” 정류장으로 눈길을 주던 씩씩이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엄마.”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아이구 우리 씩씩이 참 착하지. 엄마 마중 나왔어?” 버스에서 내린 엄마는 씩씩이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 덥지? 이거 먹어. 시원할 거야.” 엄마의 품에 안긴 채로 가슴을 발랑 젖히며 씩씩하게 말하는 씩씩이를 보는 그 순간, 내 코끝은 시큼해졌다. 어째 귀에 익은 말이라 했더니, 씩씩이는 아까 내가 저한테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되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며 그때까지도 등 뒤에 감추고 있던 것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아니, 저건?” 나는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형태만 겨우 남아 있는, 더위에 내용물은 이미 녹아서 물이 되어 버린 내가 씩씩이에게 준 붕어빵 아이스크림이었다.

    일하고 돌아오는 엄마에게 주려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간직해온 씩씩이의 커다란 보물이었다. 다 녹은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엄마의 손은 가늘게 떨려오고 있었다. 돌처럼 무딘 내 가슴 아주 깊은 곳에서도 뭉클거리는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삶은, 이래서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들 하는가 보다.

    정이식(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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