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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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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창원119구조대 3총사

“휴가 제대로 못가도 ‘소방관의 길’ 후회한 적 없죠”

  • 기사입력 : 2010-08-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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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소방서 119구조대 성낙주 구조대장(왼쪽부터), 곽용섭 소방장, 오세학 소방교가 소방차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성낙주 구조대장(왼쪽부터), 곽용섭 소방장, 오세학 소방교가 소방차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지난 13일과 17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창원소방서 119구조대 사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번번이 빈손으로 갔다.

    막상 글을 시작하면서 구조대 3총사의 얼굴을 떠올리니 ‘빈손으로 갔던 것이 참 무심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연평균 2000건의 출동. 크든 작든 벨이 울리면 현장을 나간다. 하루 줄잡아 6건꼴이다.

    창원소방서 119구조대 대원은 대장을 포함해 총 16명. 5명씩 3개 조로 나뉘어 당직을 서는데 각 조별 2명이 구급반이라 대원 중 1명이 길흉사라도 있으면 2명이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그런 속사정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휴가도 제대로 못 가 보고 연가도 못 쓰는 것이 현실’인 그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창원119 구조대 성낙주(49) 구조대장, 일복이 많은 타칭 ‘일벌레’ 곽용섭(45) 소방장, 2009년 ‘영웅소방관’으로 뽑힌 오세학(38) 소방교가 주인공이다.

    본연에 충실함으로써 ‘땀냄새’라는 향기를 뽐내는 창원소방서 119구조대 ‘3총사’를 만났다.

    “들어온 경위나 이유는 다르겠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성 구조대장의 이 같은 말에 오 소방교가 “군(특전사) 제대 후 특채로 1999년 경남소방공무원 구조대원으로 들어와 10년 남짓 구조대원으로 활동했지만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아들 둘도 아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거들었다.

    곽 소방장도 “일이야 할 만합니다”는 말로 고개를 끄덕였다.

    맏형이자 15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는 성 구조대장.

    1986년 12월 창원소방서에서 시작해 25년 중 절반을 현장에서 보냈다.

    “사회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소방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차를 몰았으면 생각해 응시했고 그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밝힌 성 구조대장은 2002년 중국 민항기 추락·구조 활동, 경부고속도로 인근 중앙선 분리 참사 등에 대한 소회를 설명했다.

    성 구조대장은 “2002년 김해소방서에 근무할 때 중국 민항기가 추락, 돗대산으로 출동했는데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면서 “한 달가량 현장에서 120여 명 남짓한 희생자를 수습하고 뒷정리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울산소방서 근무할 때니 1992~1995년 사이쯤, 경부고속도로와 울산을 연결하는 도로가 당시에는 중앙분리대가 없었는데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이미 피해 차량 탑승자들이 운명했더라”라면서 “어린 아이를 목격했고 마침 내 아들과 같은 또래라서 지금도 너무나 그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출동할 때나 위기 때, 안전운전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면서 “직원들에게 한번씩 들려주곤 했다”고 덧붙였다.

    곽 소방장은 지난해 1월 화왕산 참사를 꺼냈다.

    “새벽에 도착했는데 잔불 정리와 함께 인명을 수색하고 있었다”면서 “중국 민항기 참사, 백산보 붕괴, 1998년 지리산 계곡 폭우 대참사 등 대형 사건·사고와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성 구조대장이 “일복은 타고난 사람”이라고 거든다.

    곽 소방장은 1989년 투신, 창원소방서 119구조대만 7년 근무했다.

    “군 제대 후 경찰공무원을 할까, 소방공무원을 할까 고민하다가 이 길을 오게 됐다”고 밝힌 그는 “딱 부러지게 내놓을 공은 없지만 성 대장 말처럼 현장에는 많이 투입됐다”고 했다.

    3총사 중 막내 오세학 소방교는 지난해 소방방재청이 에쓰오일과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공동으로 소방관 중 우수한 근무태도를 비롯, 순직·공상을 당한 소방공무원을 지원하기 위해 선발하는 ‘영웅소방관’에 뽑힌 인물이다.

    당시 경남신문은 ‘오 소방교는 지난 1999년 7월 소방에 투신한 이후 2002년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현장 지원, 2003년 9월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김해 수해복구 지원 등 10년간 수많은 재해현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고 보도했다.

    오 소방교는 당시를 묻자 “그 이야기를 하니 또 부끄럽다”며 “소방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충고로 여기고 겸허한 자세로 열심히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영웅소방관’의 활약이 궁금해 공적서를 좀 보여달라고 했다.

    공적서에는 삼성중공업 등 화재 출동 571건, 인명 구조 89명, 화재 피해 경감 150억원에 인명구조 활동 691회로 기록돼 있다.

    벨 소리가 울리자 출동하는 성낙주 구조대장, 곽용섭 소방장, 오세학 소방교.(앞쪽부터)

    “기억나는 것만 소개해 달라”고 하자 오 소방교는 “지난 2007년 1월 24일 남해고속도로 김해→창원 방향 진영휴게소 부근에서 버스가 고장 차량을 피하다가 방화벽을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날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구조됐다”면서 “창원서 출동했을 때 김해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우리가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유압장비를 이용해 인명을 많이 구조했다”고 회고했다.

    오 소방교는 “지난 2004년 설을 하루 앞둔 1월 24일 창원 용지호수에서 수능시험을 치른 고교생 3명이 갈대숲 오리떼를 쫓아가다가 1명은 얼음물에 빠지고 1명은 얼음 위에 서 있고 또 다른 1명은 얼음을 잡고 있는 위기 상황이 발생, 3명을 구하긴 했으나 끝내 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했다.

    오 소방교는 “천주산 산악 인명구조, 통영 사량도 항공구조 등 셀 수 없이 사건·사고가 많았다”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을 위해 안전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구조대장은 “오 소방교는 구조활동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봉사활동, 불우가구 돕기, 현장체험장 운영, 물놀이 안전사교 예방교육 등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대원”이라고 치켜세웠다.

    성 구조대장에게 평소 복무지침을 물었다.

    그는 “구조대원은 48세가 정년이고 구조대장은 50세가 정년”이라며 “3가지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먼저 찾아서 일하고 자신을 위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연구하라’고 말하는데 이 3가지만 잘 하면 소방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서 “특히 사고 1000건을 분석하면 1000건 모두 같은 사례는 한 건도 없는 만큼 찾아서 일하고 배워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하자 곽 소방장이 “시민에게 할 말은 묻지 않느냐”는 말로 속내를 드러냈다.

    “서울에 교육을 받으러 가거나 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근무 환경(서울구조대 평균 8명, 창원 2~3명꼴)이 너무 차이가 나는데 서로 놀란다”면서 “최소한의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인력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365일 휴일 없이 현장을 누벼야 하는 그들의 애환이 어느새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곰삭은 때문인지 결코 볼멘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친 3총사들은 ‘또 다른 상황’에 준비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글=이병문기자 bmw@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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