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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지리산고등학교 박해성 교장

“배려와 나눔 교육으로 세계 명문고 꿈 키웁니다”

  • 기사입력 : 2010-09-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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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해성(왼쪽 첫 번째) 지리산고등학교 교장이 음악 수업시간에 이정희 외부 지원교사의 반주에 맞춰 학생들과 함께 합창을 하고 있다./성민건기자/


    박해성 교장이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아몽군과 함께 이불을 털고 있다.

    가난이나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공부를 가르치는 대안학교가 있다.

    작지만 큰 꿈을 키울 수 있는 산청군 단성면 호리 523에 위치한 지리산고등학교이다.

    학생수는 60여 명이며, 공부는 물론 숙식도 전국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으며, 경쟁률이 높아 가난한 학생들 순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박해성(55) 교장을 지리산 산골 조그마한 교정에서 만났다.

    첫눈에 그가 교장선생님임을 알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허름한 양복을 입고 교문 앞 울창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서성거리던 그는 안경 너머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지리산의 넉넉함을 안은 훤한 이마와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곱슬한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지만 안정적인 교직을 박차고, 지리산 산골 마을로 들어와 인재들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의 목소리에서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지리산의 올곧은 심지 같은 뒷모습은 그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헤쳐왔는지 가늠케 했다.

    공부보다는 인성교육이 우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학교 급식소에서 만난 학생들의 인사예절이다. 공부보다는 인성을 중요시하는 그의 교육철학이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녹아 누구든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먼저 베풀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우리가 배고파도 남에게 나눠주고, 가난하지만 남을 위해 배려하는 인성교육을 시키고 있다.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학생들이 배울 게 없습니다. 학생들이 받은 사랑과 정성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정신을 키우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목표입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도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변 독거노인을 찾아가 목욕봉사도 하고, 농사일도 거들면서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어려워했지만 지금은 봉사활동을 나갈 때면 가슴이 뛴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참맛을 알아가고 있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쌀을 모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등 주민들과 정으로 통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품은 대안학교 꿈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대안학교를 가슴에 품고 살아 왔다. 한평생을 교사로 살아오면서 가난한 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헌신한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님이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 삼장초 가랑잎분교를 만들었습니다. 아버님은 사비를 털고 싸리빗자루 등을 만들어 판 돈으로 지리산 산골의 화전민 자녀들을 중학교까지 보냈죠. 그 제자들이 성공해 고맙다고 와서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저도 벽지나 낙도로 가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하는 교사를 해야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그는 20여 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이 꿈을 항상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폐교가 된 그의 모교인 백곡초등학교 자리에 지리산고등학교를 설립했다.

    2002년 12월 14일은 그의 꿈이 시작된 날이다. ‘학림학교’라는 이름으로 미인가 학교를 개교, 집안 형편상 더 이상 학업을 진행할 수 없는 15명의 학생들을 모집,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2003년 인가를 받고, 2004년부터 지리산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꿔 현재는 60여 명의 학생들이 꿈을 키우고 있다.

    후원인들의 사랑으로

    지리산고등학교의 원동력은 후원인들의 뜨거운 사랑이다. 그는 학교 설립 전부터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1000원씩 모금을 하면서 후원인을 늘려갔고, 차츰 모금액을 늘려 교육청에서 지원되지 않는 학생들의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개교 초기에는 급여나 운영비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해 월 50만원 정도의 월급밖에 줄 수 없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갔으며, 처음 시작할 때 도와준 300여 명의 후원인들이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현재는 약 800여 명이 매달 1만원 정도 십시일반으로 후원을 해주고 있으며 이 후원금은 학생들 식비, 책값, 병원비 등으로 활용된다.

    박 교장은 “후원자 중에 부자는 안 계세요. 모두 넉넉한 분들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 마음 편히 공부하지 못한 한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고 계시죠”라며 고마워했다. 매달 1000만원가량 운영비가 들기 때문에 모자란 돈을 모으기 위해 박 교장은 매일 바쁘다.

    이들만이 후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 지원교사가 20명이다.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논술 및 독서지도(2007년부터 매주 수요일 2시간씩)를 무료지원해 준다. 음악을 가르치는 퇴직교장인 70대 초반의 이정희 선생님, 영어 등을 지원하는 군부대와 청학동 훈장선생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들을 지원해 주고 있다.

    박 교장은 “이 분들은 우리 학교의 설립 취지를 보고 흔쾌히 이 먼 곳까지 오신다”며 “학생들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고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자주 말씀을 하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조건 받지만은 않는다. 그는 수학여행도 학생들의 힘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2005년 첫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정하고, 학생들이 전국IT콘텐츠에서 딴 상금과 이색수학여행 공모에서 받은 상금을 합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갔습니다. 숙소는 제주대연수원을 무료로 빌리고, 관광지 입장료는 미리 학생들이 편지를 써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해상공원을 청소하고 농촌일손도 도왔습니다.”

    그의 교육철학이 학생들의 생각까지 바꾼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학교로

    그는 개천에서도 용이 난다는 것을 지리산고등학교에서 실현해 보겠다고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공부를 잘할 수 없는 사회이지만, 가난이라는 것 때문에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흙 속의 진주로 묻혀 있던 학생들을 이곳에서 인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의 신념은 조금씩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유학 온 켄트 카마숨바군이 서울대학교 수시모집에 합격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가 외국인들을 이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고 있는 이유는 먼저 베풀면 우리도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올해도 2명의 외국인이 서울대학교에 수시모집 원서를 내놓고 있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아몽군과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누르술탄군이다.

    그의 책상 위 달력에는 수시모집에 응시한 학생들의 이름과 합격발표 예정 날짜가 빼곡하게 적혀 있을 만큼, 이번 대입에 거는 기대도 크다.

    “지금은 지리산 밑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지만 세계적인 명문이 되기 위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한 원동력은 남을 배려하고 베풀고 나누는 정신입니다.”

    그는 대자연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공부한 학생들 중에 지도자가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촌놈이고 빽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이튼스쿨을 능가하는 조그마한 불씨가 지리산에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교문 앞까지 우리들을 배웅하며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리산을 좋아하고, 지리산을 닮아 학생들도 큰 덕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고 지리산고등학교로 이름을 지었다는 그에게서 지리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이종훈기자 leejh@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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