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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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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한글공정(工程)- 김홍섭(소설가)

  • 기사입력 : 2010-10-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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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한글공정(韓契工程)은, 중국이 한글을 자신들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한글공정은 동북공정에서 빌려온 말로 중국이 휴대전화나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에 한글을 입력하는 방식을 자체 개발해 이를 국제 표준화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한 전자신문에서 보도하면서 논란이 가중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중국으로서는 한글 선점 욕구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뺐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급박한 심정일 것이다. 중국의 한자는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유일한 고대문자다. 한자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1500년경 거북등과 짐승 뼈에 새겨진 갑골문자로 본다. 현재 중국이 사용하는 정자(正字) 약 5만여 개로 한자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제대로 다 알지는 못한다고 한다. 한때 고상한 언어라며 한자의 우월성을 자랑했던 중국도 정보화 시대에 들면서 한자가 얼마나 열악한 문자인지 통감했다.

    그 많은 한자를 키보드에 담을 수 없어 창제입력법이라는 몇 단계로 글자를 짜 맞추는 키보드를 쓰다가, 지금은 거의 영어 자판을 통해 병음입력이라는 방법으로 소리 나는 대로 쳐 넣고 한자로 바꾸는 방법을 쓴다. 줄이고 줄여 만든 간체자마저도 무려 2235자나 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신해혁명 직후 한자로 글을 쓴 루쉰(魯迅)마저도 ‘한자불멸, 중국필망(漢字不滅, 中國必亡)’을 외치며 한자 폐지와 로마자 표기를 주장했다.

    그에 비하면 한글은 얼마나 효율적인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한글은 지금 한글을 연구하는 전 세계 학자들이 경탄하는 대상이다. 귀신의 소리도 표기할 수 있다는 한글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과정이다. 한글 수출운동은 1995년 이후 주로 중국 등 아시아 소수민족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현복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대에 사는 소수민족 라후(Lahu)족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학과 교수 역시 중국 내 소수민족인 로바(Lhoba)족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시스템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호영 서울대 교수 역시 중국 내 소수민족인 오로첸족에게 한글 보급을 시도했다. 특히 경북대는 2004년부터 동티모르어인 ‘떼뚬어’의 표기수단으로 한글이 가능한지 여부를 공동으로 연구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미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우리의 한글을 그들 언어의 표기수단으로 받아들여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수출했다는 소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뉴스였지만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굵직한 뉴스매체에서는 연일 이 소식을 전하며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도 ‘한글사랑 나라사랑 운동본부’는 ‘한글문화 대강대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글자가 없는 전 세계 6000여 종족의 언어표기로 한글을 보급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한글을 널리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곧 국력신장에 도움이 된다. 이런 한글을 중국이 빌려서 사용하겠다면 권장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그들이 스마트폰, 스마트패드(태블릿PC) 부문에 대한 한글 입력방식을 그들이 만든 방식으로 국제 표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므로 한글은 중국 소수민족의 언어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우리는 꼼짝없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에 한글을 입력할 때 그들이 만든 입력방식을 따라야 한다. 여기에는 기업들이 한글의 자사표준을 놓고 대립하면서 무려 15년이나 끌며 국제 표준안을 만들지 못했던 책임과 이를 방치했던 정부의 잘못을 분명 먼저 짚어야 한다. 아울러 한글 수출에 있어 정부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루어져서 한글이 그 우수함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도록 도외야 한다. 세계 어디서든 한글을 쓰는 민족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우리의 자산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홍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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