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3일 (금)
전체메뉴

[사람의 향기] 노래하는 마술사 유명한(본명 유종윤)

“64살 늦깎이 연예인이지만 열정만큼은 이팔청춘이죠”

  • 기사입력 : 2010-11-22 00:00:00
  •   
  • ‘노래하는 마술사’ 유명한씨가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연미복을 입은 그가 풍선에 긴 바늘을 관통시키지만 신기하게도 터지지 않는다. 바늘을 빼낸 뒤 다시 꼽자 풍선이 ‘펑’ 소리를 내며 터지고 종이 꽃가루가 날리면서 흰 비둘기가 나타난다.

    신문지를 여러 갈래로 찢은 다음, 찢어진 신문을 뭉쳐서 하나, 둘, 셋을 외치자 찢어졌던 신문지가 원래대로 복원된다.

    4개의 링을 들고 톡톡 치자 흠이 없던 링이 연결돼 고리 모양이 된다. 다시 링을 잡고 아래 위를 흔들자 연결됐던 링이 분리된다.

    호주머니에서 실크천을 꺼내 하늘로 던지자 순식간에 실크천이 지팡이로 변한다.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 또 하나의 지팡이를 만들어낸다.

    잠시 후 다시 무대에 오른 그는 ‘낙동강 사랑’, ‘고장난 벽시계’, ‘유리벽 사랑’ 등을 구성지게 부른다. 관객들은 신나는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김해시 장유면에 사는 유종윤(64)씨는 예명 ‘유명한’으로 제법 알려진 ‘노래하는 마술사’다. 지역축제, 주민 화합한마당 등 다양한 무대에 올라 노래도 하고 마술도 선보여 인기를 얻고 있다.

    유씨는 환갑 문턱에 노래와 마술을 시작한 늦깎이 연예인이다.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가 고향인 유씨는 1966년 한전에 입사해 1995년 퇴직까지 30년을 전기기술자로 일했다. 젊은 시절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트로트와 마술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2막 인생을 살게 된 것은 5년 전부터다. 2005년 부인과 사별 후 적적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본격적으로 노래연습을 시작했다.

    “점점 울적해져 우울증 직전까지 갔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예전부터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노래를 하면서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다는 생각이 들자 아마추어 노래자랑에 얼굴을 내밀었다. 몇 년간 지역축제·방송프로그램 등에 수십 차례 참가했다.

    ‘열전 노래방’에서는 주말·월말·기말대회를 거쳐 연말대회까지 진출했으며 ‘쇼 유랑극단’에 서너 번 출연해 상을 받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창원 남산상봉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6월에는 KBS 전국노래자랑 상반기 결선에 나가 인기상을 받았다.

    유명한씨가 책속에 넣은 종이학이 비둘기가 되어 나오는 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상을 받고, 주위의 인정을 받게 되자 한 걸음 더 나아가 ‘낙동강 사랑’ 등 트로트 6곡을 수록한 음반을 제작했다. 지난 6월 1일 장유의 한 음식점에서 지인 200여 명을 초대해 놓고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고 사물놀이 공연까지 곁들여 성대한 출반 기념회를 가졌다.

    “음반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이 들었지만 출반 기념회 때는 그동안 고생은 다 잊어버렸죠. 이제 나도 음반을 낸 가수가 됐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고 날아갈 듯 기분 좋았어요.”

    마술은 노래를 본격적으로 할 무렵부터 시작했다. 노래와 마술을 같이 하는 사람이 흔치 않아 관객들이 좋아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창원에 있는 마술학원에서 100여 가지 기술을 배웠으며, 새로운 기술을 익하기 위해 지금도 배우러 다니고 있다.

    “마술의 묘미는 속이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속았는지 알지 못하게 하고, 속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속았지만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은 마술뿐이죠.”

    유씨는 한 달에 두세 번 그가 속한 연예인단체와 함께 김해 경남도립김해노인전문병원, 부산 보훈병원, 민간 병·의원. 복지회관, 경로당 등에서 노인들을 위한 봉사공연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은 2년 전부터 시작했다. 모시고 살지는 않지만 10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한 구순 노모를 생각해서 외로운 노인들 앞에서 재롱을 부려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연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노인들이 유씨의 손을 잡으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할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주로 병원에 많이 가는데, 노인 환자 분들이 공연을 보면서 아픔을 덜고 하루빨리 쾌차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죠.”

    그는 다양한 단체에 소속돼 있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함안군지회, 장유풍물단, 김해문화원 풍물단, 김해음악사랑회, 김해가야문화예술회, 김해실버스타회 등에서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녁부터는 밤을 새워 주유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연예활동, 봉사활동, 단체활동을 통해 자신의 끼를 발휘하고 남들을 기쁘게 하는 삶에 만족하고 있다.

    지금 그의 소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노래가 히트해 남들이 불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구순 노모 앞에서 ‘64년 만에 불러보는 나의 노래’라는 주제로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고 장기인 노래와 마술을 선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이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금처럼 외롭고 병든 노인이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환갑의 문턱에 시작한 연예활동이지만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열정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으니까요.”

    그는 지금 나이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글=양영석기자 yys@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양영석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