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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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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장구지소- 지팡이나 신발이 지나간 곳. 선현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유적

  • 기사입력 : 2010-12-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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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우리 조상들이나 중국 사람들은 대현(大賢)이 태어나신 곳, 사시던 곳, 맡아 다스렸던 곳, 강학(講學)하던 곳 등등 관련이 있는 곳이면, 모두 서원이나 사당을 세우거나 비석을 세워서 후세 사람들이 훌륭한 사상이나 덕행(德行)을 보고 배우도록 했다.

    그래서 공자(孔子) 같은 분의 경우, 중국이나 우리나라 각 고을에 공자의 위패(位牌)나 상(像)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없는 곳이 없고, 주자(朱子) 같은 분도 그를 모신 서원이나 사당이 100여 곳에 가깝다. 우리 나라의 퇴계선생(退溪先生)이나 우암(尤庵先生 : 宋時烈) 같은 분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서원이 전국에 50여 곳이 넘는다.

    훌륭한 분들의 학덕을 후세 사람들이 존경하여 배우면서 다음 세대의 교육에 모범으로 삼아 훌륭한 사람이 되자는 데 목적이 있다. 단순히 양반 자랑이나 하려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 있는 서원이나 사당, 비석 등이 사회 교화(敎化)와 교육의 자료였다.

    예를 들어 퇴계선생 같은 경우를 보면, 우리 경남에만도 의령(宜寧)의 덕곡서원(德谷書院)과 가례동천(嘉禮洞天), 퇴도암(退陶巖), 거창(居昌)의 영승서원(迎勝書院), 사락정(四樂亭), 함안(咸安)의 경도단비(景陶壇碑), 삼우대(三友臺), 진주(晋州) 금산(琴山)의 퇴계시비(退溪詩碑), 곤양(昆陽)의 작도정사(鵲島精舍) 등등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거기다 조선 후기에는 진주 문산(文山)에 퇴계의 서원이 창건되다가 그만두었다. 퇴계선생의 발걸음이 미친 곳에는 거의 모두 기념물이 세워져 있는 셈이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는 서원이나 사당, 비석 등을 세우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 과학문명시대에 이런 것이 꼭 필요하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러나 풍속 교화와 후세 교육을 위해서는 이런 일들이 모두 큰 도움을 준다. 범죄율이 늘어나고, 불량청소년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인간미가 메말라가는 이유가 다 교육적인 기능을 가진 좋은 제도를 팽개치고 학교 교사들에게만 교육을 전적으로 맡기기 때문이다.

    각 고을에서는 자기 고을이 낳은 위대한 인물의 행적을 밝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비석 등으로 세워 두면, 보는 사람은 보고,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것이니, 교육 효과가 없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일 하동군(河東郡) 옥종면(玉宗面)에 남명선생 숭모비(崇慕碑)가 세워졌다. 남명의 경의사상(敬義思想)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 학문이 일반대중 앞에 공개되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지나가다 읽어 보면, 학덕과 함께 남명선생의 행적을 알게 될 것이다.

    학자들이야 연구를 통해서 선생의 위대한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알기 쉽고 접하기 쉬운 자료가 있어야만 선현들의 위대한 점을 배우고 알아서 현실생활에서 실천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날로 타락해 가고 있어, 뜻있는 사람들이 탄식을 금치 못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회복하여 도덕적으로도 선진적인 나라가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장구(杖)란 뜻은, 선현들의 지팡이와 신발이란 뜻인데, 사람이 발걸음을 옮기려면 지팡이와 신발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좀 위대한 분들의 자취를 ‘장구’라는 말로 표현한다.

    *杖 : 지팡이 장. * : 신 구. *之 : …의 지. *所 : 바 소.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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