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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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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다방- 정일근

  • 기사입력 : 2011-0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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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의 모든 길들이 모여들고

    모여들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중원로터리에서

    갈 길을 잃은 뒤축 구겨진 신발을 등대처럼 받아주던,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을 터트려

    내가 숨쉬기 위해 숨어들던 그곳,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인을 꿈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였던 흑백다방이여

    (중략)

    그 자리 그 색깔 그 향기로

    사진첩 속의 흑백사진처럼 오래도록 남아있는

    since 1955 흑백다방,

    진해시 대천동 2번지-정일근의 ‘흑백다방’ 중에서

    ☞ 황선하 시인은 진해의 벚꽃을 ‘당신의 지순한 사랑’이라 명명했습니다만, 진해는 벚꽃 말고도 특별한, 아주 특별한 고유명사 ‘흑백다방’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감상실이자 화랑과 연주회장과 연극공연장, 시낭송회장을 겸하던 곳. 어떤 형태로든 진해와 문화예술적 고리를 하나라도 가진 이라면, 그들의 하드웨어 디렉토리에 흑백다방이라는 추억과 열정을 보관하고 있을 것입니다. 1952년 진해시내 8거리에 ‘칼멘’이란 상호로 문을 연 흑백다방(55년 개명)은 유치환 이중섭 윤이상 서정주 김춘수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찾아오던 곳입니다.

    진해 문화의 등대 흑백다방을 소재로 한 시는 한두 편이 아닙니다. 김승강, 고영조, 오하룡, 정이경, 이상개, 이성복, 이수익, 배기현, 방창갑, 황선하 등등. 흑과 백의 단순한 조화와 느림의 미학을 말없이 보여주던 그 흑백다방이 지금은 없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다독이려고 해안도로를 따라 걷지만 어떤 것도 그 자리를 채워주지 못해 슬픕니다.

    이월춘(시인)

    ※이번 주부터는 이월춘 시인이 명시를 소개하고 해설을 덧붙입니다. 이월춘 시인은 1957년 창원 출신으로 1986년 무크 ‘지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칠판지우개를 들고’ ‘동짓달 미나리’ ‘추억의 본질’ 등이 있으며, 김달진문학상 월하진해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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