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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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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인역(山仁驛)에서 - 이상규

  • 기사입력 : 2011-04-07 01:00:00
  •   


  • 특급열차가

    마지막 남은 진달래꽃빛마저 휘감아

    낮은 산자락을 물들이고 사라집니다.

    떠나고 보낼 이도 없는

    경전선 산인역

    ‘산장’으로 이름이 바뀐 역사에는

    어제를 모르는 사람들만

    밤이 이슥토록 이별노래를 부르는데

    한 켠으로 밀려난 간이역엔

    완행 열차를 기다리는 사내 하나

    추억처럼 서 있습니다.

    풀먹인 무명 베옷에 보퉁이를 인

    낯익은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리에서건, 함안에서건

    어느 어금에서 내려도 좋을

    마산역 발행 승차권 한 장이 잊혀진 듯

    레일 사이에 누워

    봄비에 젖고 있을 뿐입니다.


    이상규 ‘산인역에서’ 전문(시집 ‘응달동네’, 1997)


    ☞ 서울 청량리역과 부산 부전역을 오가던 통일호가 사라진 지도 꽤 되었다. 준특급이던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대신하고 있으니 열차도 초고속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고 있다. 함안에서 나서 함안을 지키고 사는 시인에게 산인역은 하찮은 간이역이 아니다. 고향의 다른 이름이며, ‘무명 베옷에 보퉁이를 인 어머니’이다. 모두가 추억이 되어 역사의 한편으로 밀려나 버린 그 상실감이 ‘레일 사이에 누워 봄비에 젖고 있을 뿐’이다. 창원 근처에 사는 사람 치고, 경전선 기차를 타 본 사람 치고 산인역의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시인의 눈에 비친 대상은 이처럼 아련하고 젖은 슬픔이 되어 우리를 향수에 젖게 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했는데, 오늘밤 입곡 저수지엔 그때 그 시절의 달이 떴을까. 이 시를 읽고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를 받는다. 이월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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