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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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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여 생각-바다서곡4 -이상원

  • 기사입력 : 2011-04-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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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여름 가문여를 찾은 것은

    몇 마리 깨장어에 불과했다. 감숭어는

    부푼 배를 싸안고 옛집을 찾았지만 아무도

    낚시줄을 내리지 않자 돌아가버렸다. 언제나

    바다를 껴안은 채 서로를 줄다리던

    팽팽한 시간이 사라진 무료함은 울고 싶던 것이다

    뭍에 갇혀 나 또한 길마저 삭제된 공간의 늪에 갇혀

    허파라도 내발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불러 세울

    한마디 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가문여는

    소문 하나 낳지 못한 채 저물어만 가고

    여름은 하릴없이 꼬리를 말아 수평선을 넘어갔다.

    저마다의 동굴에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서로를 기억하며 우리는 상처처럼 늙어가고

    해초들의 잠도 그렇게 삭아갈 것이다.



    - 이상원 ‘가문여 생각’ 전문(시집 ‘지겨운 집’, 2007)

    *가문여 : 경남 고성 자란만의 여 이름

    감숭어 : 감성돔의 방언

    ☞ 고성의 자란만은 이름이 참 예쁘다. 그 이름의 기운을 받아 시를 쓰는 이상원 시인. 산문집 ‘조행잡기’를 낼 정도의 낚시 실력에다 아마추어 고수인 바둑 실력까지 갖춘 시인 이상원.

    그런데 어찌 이리 시가 어둡고 무겁고 슬픈지. 시인의 큰 눈처럼 언제나 쓸쓸함이 깊기 때문일까. ‘상처처럼 늙어가’기는 참으로 싫은데, 그렇게 ‘삭아가기는’ 정말 싫은데, 세상은 ‘하릴없이 꼬리를 말아 수평선을 넘어가’ 버린다. 고성 통영의 자연 속에서 이런 슬픔의 이미지를 뽑아내는 시인과 찬 소주 한잔 나누고 싶다. 무능과 불확실과 부재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읽는 봄밤은 참말로 가슴이 아프다.

    이월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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