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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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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24) 작곡가 설진환씨

3·15 민주화 함성, 오선지에서 외치다

  • 기사입력 : 2011-05-1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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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의신여중에서 작곡가 설진환씨가 자신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다.
     
     
    "작곡은 '사물에 대한 관심'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물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 되어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 흐름이 지구상의 무한한 점과 선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위대한 이 예술작품을 인간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는 바로 이 소리를 찾아 구체화시키려는 노력이 자신의 작곡 과정이라 말한다.

    3·15 49주년 기념 음악회 전곡 14곡을 작곡한 작곡가 설진환. 비가 추적추적 오는 11일 오후 그가 교편을 잡고 있는 의신여자중학교에서 만났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어머니를 따라 늘 학교 주변을 맴돌던 그는 오르간 소리가 들리는 곳을 기웃거렸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바이올린도 켜고 노래도 부르러 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부모는 하지 못하게 했다. 몰래, 독학으로 공부했다. 고등학교 2학년 되던 해 진해군항제 전국 학생음악경연대회 작곡부문에서 상을 타왔다.

    “진해군항제 나갈 때 전 작곡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악보 서른 장을 베끼고 또 베끼며 연습했죠.”

    허락이 떨어졌고 그해 경상남도 학예발표회에 나가 작곡부문 최우수상을 탔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마산에서 가진 첫 작곡발표회를 시작으로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3·15 기념곡을 쓴 이유에 대해 “3·15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타올라야 할 횃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 또한 대학시절 10·18부마항쟁이라는 뼈아픈 과거를 겪은 세대이다. 시대의 아픔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또 하나 개인적인 이유를 꼽았다.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마산은’이라는 시로 민주화 운동에 불을 지핀 살매 김태홍 시인이 그의 외숙이다.

    3·15 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한 저항이 잠잠해 질 무렵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사진과 살매 선생의 시가 4·19 민주혁명을 성취하는 촉매제적 역할을 했다. 이후 선생은 교직에서 파직당하고 구금됐다.


    마산은

    고요한 합포만(合浦灣) 나의 고향

    ……

    봄비에 눈물이 말없이 어둠속에 피면

    눈동자에 탄환이 박힌 소년의 시체가

    대낮에 표류하는 부두

    ……

    정치는 응시하라 세계는

    이곳 이 소년의 표정을 읽어라

    이방인이 아닌 소년의 못 다한 염원들을

    생각해 보라고.

    - 마산은, 살매 김태홍


    외숙의 꿋꿋한 시대정신 또한 그를 움직였다. 그는 이 시에 곡을 붙여 49주년 3·15 민주 음악제에 선보였다. 바리톤 유영성 창원대학교 교수가 연주했다.

    “첫 작곡발표회에 외숙이 홀연 나타나셨습니다. 발표회를 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거든요. 두 손 가득 당신의 시집을 들고 오셔서 제 지인들에게 나눠 주시며 ‘진환이가 내 조카’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살매 선생은 1985년 돌아가셨다.

    유난히 ‘처용가’, ‘하여가’, ‘단심가’ 등 우리의 정서가 녹아 있는 합창곡들을 많이 쓴 이유에 대해 “어떤 특정한 정서라는 것을 하나로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세계관이 혼합돼 있고 그 다양한 세계관의 뿌리가 우리의 심층 의식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우리의 뿌리에 닿아 있는 세계가 흔히 말하는 한국적 정서이며 이를 통해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 믿음이 많은 곡들을 쓰게 했다.

    그는 고민이 많은 작곡가다. 작품을 발표할 때 잘 ‘모르겠어요’라는 관객의 반응에 실망할 때가 종종 있다. 반면 쉬운 접근방법을 택했을 때엔 ‘누구나 같은 곡을 쓴다면 새삼스레 내가 곡을 써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힌다.

    “주변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적어도 내 길을 조용히 가리라 매순간 다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여주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음악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근 그의 고민은 지역 출신 음악인들의 열악한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까 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며칠 전 그는 열심히 창작하는 후배를 만났다. “선배, 저 생활이 어려워요. 트로트를 작곡해 봐야겠어요”라며 쓴웃음을 짓는 후배의 모습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업 예술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의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 포기하는 사례를 그는 보아왔다.

    그는 지역이 문화기반을 가지고 음악인들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그 토양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인 중앙 문화 집중현상으로 지역사회의 문화 환경은 계속 낙후될 것이라 경고한다.

    “토론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에는 중앙 못지않게 훌륭한 음악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습니다. 지역 음악인들이 역량을 발휘해 독특한 지역색을 악보 위에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방안을 각계각층이 함께 모여 소통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유학시절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던 기억을 하나 끄집어냈다.

    이탈리아에서 작곡 발표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곡에는 우리 음악의 농현적(국악에서 현악기를 연주할 때 왼손으로 줄을 잡고 흔들어 꾸밈음을 내는 것) 표현 등 특징적인 우리 음악의 느낌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는 자신의 곡이 어떻게 연주되어질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지도교수와 함께 늦은 밤 연주할 사람들이 머문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 문 틈으로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이 흘렀다. 이 늦은 시각 내 작품 연주를 위해 이렇게 연습을 하고 있다니….

    “연주자들은 연주하면서 제게 의문스러웠던 부분들을 물었고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연주자들이 새로운 곡을 연주한다는 것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연주자들은 연주비를 한사코 받지 않았다. 타국의 젊은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작품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고 하자 그는 ‘정령들의 대화’라는 실내악 작품을 소개했다.

    ‘정령들의 대화’는 인간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오해, 질투, 시기가 없는 영들의 세계에서 대화하는 내용으로 소통에 거리낌이 없는 평화로움을 표현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 지역과 지역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는 늘 평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물’과 같이 살기를 바란다. 물은 깨끗하고, 인자하고, 겸손하고 생명을 살린다. 이러한 물이 바로 평화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그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음악에도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정화하면서 넓고 큰 생명의 출렁거림 속에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



    ◆작곡가 설진환씨= 창원대학교 음악과 졸업.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이탈리아 프레스코발디 종교음악원 합창지휘과, 작곡과를 졸업. 때라모 아카데미아 작곡과, 오케스트라지휘과 졸업. 코렐리 하계음악학교 수료. 국내외 개인작곡발표회 개최. 순천대학교, 창원대학교 음악과 강사. 3·15 50주년 기념음악회 지휘.

    주요 작품으로 실내악곡 4image(想生有無), 현악4중주(갈등, 정령들의 대화Ⅰ,Ⅱ), 念(10·18 30주년 기념 위촉 작품), 합창곡 (정읍사, 하여가, 단심가, 자유 등), 피아노곡(無言의 對話), 3·15 49주년 기념음악회 전곡(14곡), 뮤지컬 ‘시뭐꼬(김달진탄생 100주년 기념 위촉 작품)’ 외 성가곡, 가곡 작품 다수.

    현재 (사)진해음악협회장, 3·15 뮤직컴퍼니오케스트라 지휘자, 경남교원필하모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경남작곡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마산 의신여중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글=김용대기자 jiji@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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