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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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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내 마음의 명소- 박영희(소설가)

  • 기사입력 : 2011-10-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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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서 손님이 오셨다. 연고나 인연이 없어 여태 마산은 한 번도 와 보지 못했다고 하시는 선생님이 어떻게 날을 잡아 방문을 하시게 됐다. 마산의 어떤 곳을 소개할까 어느 곳을 보여 드릴까 곰곰이 생각했다. 무학산, 어시장,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3·15의거탑 그리고 아귀찜과 복국거리…. 마산은 문화의 도시고, 시의 도시며 또 거리마다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의 도시다. 그러니 늘 마음에 두고 찾는 곳이면 좋을 것 같고 문화와 예술정신이 깃든 곳이면 더욱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번째 방문할 곳은 문신미술관으로 정했다. 문신미술관은 집에서도 가깝지만 문신 선생님의 치열한 정신세계가 느껴져 게으름에 길들여진 나로 하여금 늘 긴장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가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면 절로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학산을 뒤로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미술관은 별관을 지어서인지 훨씬 웅장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다음으로 나의 두 번째 마음의 안식처로 선생님을 모셨다. 그곳은 차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 낮은 언덕을 넘어서면 푸른 숲이 먼저 눈에 가득 들어오는 가포에 있는 국립 마산병원이다. 내가 왜 이곳을 좋아하는지 가끔 생각해본다. 어릴 적 이웃에 살았던 친구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요양을 한 인연도 있었지만, 오래전 부처님 오신 날 밤에 우연히 들렀던 관해사의 고즈넉함과 가난한 아름다움이 나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병원마당에 세우고 건물 뒤편을 돌아서면 아! 하는 마음의 울렁임을 올 때마다 매번 느낀다. 그곳엔 50년 전에 돌로 지은 아주 작고 예쁜 예배당이 있다. 여태 그렇게 작고 운치 있는 교회는 본 적이 없다. 그 예배당 앞을 스쳐 올라가면 수수한 도량이 매력인 관해사라는 절도 있다. 화려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신도 수가 많지도 않은, 아는 분만 아실 것 같은, 이곳에 계신 환우 분들만 오실 것 같은 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긴 세월을 견뎌왔을 것 같다.

    작은 예배당 문은 늘 열려 있고 그곳에 들어서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 분들의 기도문들이 내 마음에 아로새겨진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이곳 국립 마산병원은 우리 역사와 함께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 병원에서 아픈 몸을 치유했던 많은 문인들이 계셨던 곳이라 더욱 애정이 느껴진다. 봄이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관해사 마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법당 쪽으로 난 긴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화단의 작은 비석엔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시가 새겨져 있다. 지난 세월 어느 멋진 날 언제 그분이 오셔서 찬시를 남기셨는지 변방에 사는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은 매립이 된 추억의 장소인 가포유원지를 지나 다음 목적지인 저도 연륙교로 향한다. 바다가 매립되고 아름다운 해안선이 사라졌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해안선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수정마을을 지나 안녕마을을 거쳐 옥계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면 오붓한 섬들이 멀리 보이고 시원한 바람 한줄기 이마를 간질인다. 해풍을 느끼며 도착한 저도의 바다는 세숫물 한 바가지 떠 놓은 것처럼 잔잔했다.

    철교가 멋진 옛 연륙교를 걸어가면 다리 난간에 사랑의 영원함을 맹세하는 자물쇠가 줄줄이 매달려 있어 보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랑이라는 스토리가 스며 있는 이곳을 나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사랑의 맹세를 하면 이루어진다는 작은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기에 내 문학적 상상이 그렇게 정해버린 것이다. 선생님은 카메라 렌즈를 철교와 바다와 주위 풍경에 연신 들이댄다.

    마산은 거리마다 이야기가 있는 도시며 사랑의 도시라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선생님도 아셨으리라. 너무 소중하고 반드시 가꾸고 보존해야 할 곳을 보았다고 흐뭇해하시는 모습에서 내 마음의 명소를 가지고 있는 나는 가끔, 이렇게 행복해진다.

    박영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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