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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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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신용카드가 만든 그늘- 배재운(시인)

  • 기사입력 : 2011-11-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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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18일, 전국 음식업종사자들이 서울 88올림픽 경기장에 모여 일명 ‘솥단지 투쟁’이라는 10만인 결의대회를 열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말해 먹고살게 도와달라는 하소연이고 분노의 표출이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외환위기 여파로 명예퇴직, 희망퇴직, 정리해고란 이름으로 쫓겨난 수많은 직장인들이 재취업이 불가능한 막막한 상황에서,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선택한 게 주로 음식점 창업이었는데, 그 수는 지금도 꾸준히 증가해 인구 200명당 한 개이던 식당이, 이젠 인구 80명당 한 개꼴로 많아졌다 한다. 이들 대부분은 퇴직금과 대출금을 밑천으로 시작했는데, 고물가와 출혈경쟁으로 도산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식당은 자영업이라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제 맘대로 할 수 있어 편하고 좋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밖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다. 우선 식당은 일 년 365일 노는 날이 없고 퇴근 시간도 없다. 가게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종업원 없이 혼자 하거나 부부 둘이서만 운영하는 영세한 규모다 보니,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고 문을 닫을 수도 없다. 아무리 단골손님이라지만 배고픔을 참아가며 오늘 점심을 내일로 미루진 않는다. 문을 닫으면 다른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니,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식당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대도 한 달 수익이 비정규직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게 영세자영업자의 현주소다.

    카드 수수료 2.7%, 얼핏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30% 이내의 마진에서 매출액의 2.7%는 이익금의 10%에 해당한다. 즉, 카드사는 밥 한 그릇 팔아 남는 돈의 10%를 꼬박꼬박 불로소득으로 챙겨 가는 꼴이다. 새벽부터 시장보고 다듬고 요리해서 저녁 늦게까지 영업을 하지만, 오르기만 하는 식자재비, 공공요금, 냉난방비, 가게임대료나 대출이자 빼고 나면 빈 지갑뿐인데, 카드 수수료는 매출액에서 2.7%씩 꼬박꼬박 선불로 챙겨가니, 여기에 뿔난 것이다.

    신용카드 남발과 방만한 운영으로 자초한 카드대란 때, 정부는 국민 혈세인 공적 자금을 투입해 카드사를 살려 주었는데, 지금 카드사는 오히려 과도한 수수료로 배불리며 영세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일 년에 수십만 개의 식당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그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지만, 이들의 회생을 위해 정부가 무슨 특별한 대책을 내놓는 걸 보지 못했다. 정부는 오히려 세금을 수월하게 거두기 위해 카드 사용을 권장했고, 카드사는 이 기회를 이용해 카드를 남발하고 높은 수수료로 이윤을 챙겨 왔다. 결국 여론과 정부의 압박에 못 이긴 카드사들은 뒤늦게 수수료 인하 방침을 밝혔지만, 기대하는 만큼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워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신용카드 발급 수는 1억2230만 장으로 ‘카드대란’ 직전인 2002년의 1억480만 장보다 1750만 장이 많고 과다한 발급비용으로 제2의 카드대란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카드사들은 덩치 키우기에만 더 바쁘다. 그것은 아마 카드 수수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1% 특권층은 황금알을 줍기 위해 카드를 남발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소득공제와 포인트 적립이라는 작은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열심히 카드를 사용해, 황금알 낳는 거위를 키워주고 있는 꼴이다.

    결국에는 카드 수수료가 물가에 반영되어 모두 그만큼 비싼 값을 치러야 하고, 또다시 카드사를 위해 혈세를 쏟아 부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미 생활에 익숙해진 카드를 쓰지 마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가정 경제를 위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외상이자 빚이 될 수 있는 신용카드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는 것뿐이다.

    배재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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