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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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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마라톤 전문 사회자 강성호씨

1년에 스무번 ‘입으로’ 마라톤 완주
제 목소리만 들어도 ‘아, 이 사람’ 할걸요

  • 기사입력 : 2011-11-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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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호씨가 지난 10월 열린 제8회 경남마라톤대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지난 11월 열린 진해마라톤대회 경기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강성호씨.


    강씨는 노래교실에서 강사로 활동중이다.


    어떤 모임이나 행사든지 간에 사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자가 어떤 식으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살 수도 있고 정반대로 완전히 엉망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회자가 행사의 ‘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자라도 1~2시간에 끝나는 일반 행사와 달리 한 번에 쉬지 않고 5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7~8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붐이 일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마라톤 대회의 사회자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마라톤 대회의 경우 사람들이 모이는 오전 8시부터 마지막 주자가 다 들어올 때까지 하프는 6시간, 풀코스는 8시간 동안 계속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내에서는 드물게 마라톤 사회자로서 전국을 누비고 있는 사람이 있어 눈길을 끈다.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의 강성호(47·강성호 신바람 노래교실 운영)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4년 밀양아리랑 마라톤 행사에서 첫 마이크를 잡기 시작해 현재 전국 20개의 마라톤 대회에서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 번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본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는 또한 창원에서 노래를 좋아하는 주부들에게 열성적이고 싹싹한 ‘강성호 신바람 노래교실’의 노래강사로서 더 익숙해져 있다.

    강씨가 마라톤 사회자로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웅변과 방송 등으로 남들 앞에서 말하는 솜씨를 발휘했고, 취업 후에도 회사는 물론이고 주말 등을 이용해 사회자로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직업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강씨는 1965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창포리의 넉넉하지 않은 농가에서 4남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시절 웅변 지도를 받아 반 대표로 중학교는 물론 고교 때까지 웅변대회에 참여해 수상을 하기도 했다. 고교시절에는 교내 방송반에서 활동하면서 매주 토요일 전교생을 대상으로 명상의 시간을 방송하면서 방송계 진출을 꿈꾸기도 했다. 특히 고3 때는 ‘mbc젊음의 행진’에 리포터로 발탁됐으나 연고가 없어 담임선생님의 만류로 포기했다.

    그런가 하면 고교 시절 음악선생님이 그에게 레슨을 받아서 성악 전공(테너)을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 힘있고 굵직한 목소리를 가진 그의 노래에 음악선생님이 매료됐던 것 같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상 레슨은 물론이고 나중에 대학을 포기하고 고교 졸업과 동시에 1985년 해군에 입대하게 된다.


    사회자로 활동 시작

    88년 군대를 제대한 후 창원 LG전자에 입사, 사내방송국 아나운서와 사내체육대회 사회자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사회자로서 무료 봉사활동을 펼친다. 특히 93년 LG전자를 그만두고 94년 대우가전마트(지금의 하이마트) 창원 명곡점 영업부장으로 들어간 후 업무상 홍보를 위해 한 번씩 출연한 95 MBC동네방네(으뜸상), 96년 KBS전국노래자랑 진해시(우수), 96년 KBS전국노래자랑 상반기 결선(장려), 98년 KNN부부가요쑈(우수)와 서울 트로트가요제(최우수) 등에서 수상하면서 가수 겸 사회자로 교도소 등에서 무료공연과 함께 이벤트 등의 부업으로 나서게 된다.

    “당시 각종 노래대회 수상으로 가수를 꿈꾸며 서울을 오가곤했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이 가수를 하려면 이혼도장을 찍고 가라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돈과 연고 없이 서울에 가 봐야 가수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집사람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가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는 사회자로 뛰면서 지난 2003년부터는 창원 상남동 삼원회관에서 ‘강성호 신바람 노래교실’을 시작으로 4~5년 전부터는 창원지역 8곳에서 노래교실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그는 2002년 음식점(성호생갈치전문점, 1998~2005년)을 할 때 우연히 국회의원 연설을 맡고 난 후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 경기대학원에서 1년간의 스피치과정을 수료하고 난 후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선거의 후보연설을 하기도 한다.



    우연히 맡게 된 마라톤 사회

    지난 2003년 12월 어느날 아침 통영마라톤대회 기획사 측으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마라톤 사회를 맡기로 한 사람이 오기로 했는데 펑크가 났다며 급하게 행사장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라톤 사회에 자신이 없었지만 곧바로 가던 중 그 사회자가 온다는 소리에 다시 돌아왔다.

    그 후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TV나 매스컴, 책자 등을 통해 공부를 하는 한편 늦깎이 대학 진학을 하면서 사회체육학과도 지원했다. 그러던 중 통영대회 기획사 측이 미안했던지 2004년 2월 밀양아리랑대회의 사회자로 요청,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 대회는 당시 전국에서 참가자가 7000명 이상이 될 정도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이 대회와 합천벚꽃마라톤대회 등의 사회를 맡으면서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잘하더라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섭외가 들어와 5년 전에 10~15개, 현재 20개 이상 대회의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도내 대회가 많지만 서울새벽강변마라톤대회, 전남 강진청자마라톤대회, 해남땅끝마라톤대회, 순천 남승룡마라톤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마라톤의 사회자를 맡으면서 다른 일반 이벤트 진행에 비해 그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초창기 마라톤 대회는 참가자가 7000~1만명에 이르면서 인산인해였다. 그 속에 단 한 사람인 사회자가 참가자들의 긴장감과 처져 있는 기분을 돋우고, 또 만약에 있을 안전사고 주의 안내, 일정 소개, 주의사항, 탈의실과 물품보관소 위치, 자원봉사자 소개 등 많은 방송을 계속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개회식에 이어 출발 후에는 먹거리 등 주변 안내와 함께 달려 들어오는 선수들의 이름과 배번을 끝까지 안내해야 한다. 적어도 6시간(하프) 이상 서 있을 수 있는 체력과 목소리가 필요하다. 풀코스는 8시간이 걸린다. 점식시간도 반납한 채 힘든 길을 달려온 참가자들의 이름과 배번을 불러주기 위해 준비해간 미숫가루 마시는 것으로 대신한다.

    “마라톤 진행을 하면서 참가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줄 때, 출발신호와 함께 길게 줄을 이어 달릴 때가 가장 보기가 좋고 기분도 최고입니다. 그리고 사회자의 구령에 다함께 목청 높이 외쳐주고 동작을 따라할 때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분들이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대회를 마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강씨는 또 요즘에는 마라톤 대회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달림이들이 먼저 알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줄 때 행복을 느낀단다.



    에피소드

    마라톤 대회를 진행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도 많단다. 마라톤 경기규칙에 대해 전문적으로 전수받은 게 없는 상태에서 한 대회의 사회를 맡았는데 주최측에서 갑자기 풀코스 출발시간을 15분 늦춰야 한다는 요청을 받았다. 자원봉사가 주로에 나가질 못해서였다. 그는 ‘이래도 되나’ 하고 생각하면서 늦게 출발시켰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후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온 수많은 질타를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마라톤 대회는 차량통제시간이 있어 종료시간을 정해둔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한 대회에서 풀코스를 5시간 만에 종료선언을 하고 무대를 철수했다. 그런데 참가하신 선배님이 들어오면서 “정말 힘들게 달려왔는데 대회 종료 후여서 환영을 받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토로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 후 대회부터는 종료시간은 있어도 그는 사회자로서 모든 선수가 들어온 후 마치고 있다. 기다려주는 미덕을 보여주자 달림이들이 사회자를 더욱 고맙게 생각해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남 땅끝마을 마라톤대회 사회자로서 아침에 시작해 9시간 진행을 해본 적도 있다. 마지막 주자인 여성 참가자에게 회송차를 타라고 아무리 권유를 해도 “풀코스 첫 출전이라 포기할 수 없다”며 끝까지 달려 2월의 차가운 날 저녁 6시30분경에 마친 적도 있다고 한다. 사회자가 기다리자 주최측 사장도 끝까지 남아 선수를 격려해주고 난 후 그에게 “정말 수고 많았다. 이런 사회자는 처음 본다”며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마라톤 사회 더욱 매진

    “요즘은 마라톤 대회가 많아서인지 참가자가 적어 5㎞의 경우 주변의 권유로 마지못해 참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서로 경쟁하며 들어오고 장난스럽게 뛰는 것을 많이 봅니다.” 다년간 사회를 보면서 마라톤 전문가 못지않은 그는 “마라톤은 장난스럽게 뛰다 보면 오버페이스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때가 많다”면서 마라톤 초보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맡은 일은 끝까지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생활신조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강씨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어느 대회라도 초대가 있으면 달려가겠다”면서 “저는 기꺼이 달림이 여러분들의 도우미 역할로 최선을 다하고, 단 한 분이라도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면 힘차게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 이명용기자 mylee@knnews.co.kr

    사진= 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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