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에 서울에 도착한다는 것- 김혜순
- 기사입력 : 2011-12-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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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은 시간
운전사와 필름 끊긴 취객 둘이 타고
신나게 종로 거리를 달려가는
환하게 불켠 심야 버스처럼
밤새도록 눈 한 번도 안 깜빡이는
응급실 하얀 네온 간판처럼
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링커를 꽂고
누워 있는 자정의 종합병원처럼
탁자마다 속이 다 비치는
옷을 입은 전화기가 저마다 소리치고 우는
카페 펄프처럼
삐삐들, 공중전화들, 광고지들 마구 쏘다니는
문닫고 환한 명동 이클립스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동생이
저마다 입던 옷 벗어들고 달려오는
24시간 환한 ‘마이 뷰티폴 런더랫’처럼
다 잠든 시각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불타오르는 서울 한복판의 황금장미
남대문 시장처럼
이 밝은 천당!
누가
만 원에 산 어항처럼
흔들고 가고 있는지
☞ 토요일 밤에 서울에 도착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군요. 남산 꼭대기에서 시인은 서울의 환하게 불 켠 곳들을 유심히 바라보았군요. 응급실 간판처럼, 자정의 종합병원처럼, 카페 펄프처럼, 명동 이클립스처럼, 마이 뷰티풀 런더랫처럼, 이 밝은 천당!
그야말로 현대의 대도시들은 24시간 밝고 환한 천당이지요. 아니지요. 지옥 중에서도 생지옥이지요. 자정이 넘은 남산 꼭대기에서 시인은 그걸 바라보았군요. 그런데도 이 지옥이 왜 이리 아름다울까요. 왜 앞다투어 서울로 서울로 올라갈까요. 저 역시도 그 서울을 많이 사랑합니다. 활기차고 멋지고 휘황찬란한 우리 시대의 지옥이야말로 정말로 멋진 곳이니까요. 지옥에서 그대를 만나고 지옥에서 그대를 사랑하고 지옥에서 그대와 함께 죽어버려라. 불쌍한 사랑기계들이여. 이제 시인들은 이렇게 노래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불타는 도시를, 밝고 환하고 타락한 도시를 <만원에 산 어항처럼/들고 가>는 사람들에게…. -유홍준(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