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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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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이기인

  • 기사입력 : 2012-01-2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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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얘야, 돈벌레는 잡지 마라 돈벌레는 돈을 갖다주는 벌레란다



    물을 먹은 벽지가 힘없이 떨어지던 날

    옛날 집주인의 벽지에서 연꽃이 한 송이 주욱 벌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움찔움찔, 기어나온 돈벌레



    꽃잎 속에 숨어 있는 돈벌레, 요놈을 어찌할까요, 어머니

    발바닥도 많은 놈이, 어이어이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 갈 곳을 찾지 못한 건가,



    돈벌레는 요강을 맴돌다 차례차례 신을 벗어 놓는다

    버릴 수 없는 신발이 내게도 있다



    ☞ 돈벌레가 어떻게 생겼냐고요?

    돈벌레는 다족류입니다. 뭐 지네나 그리마처럼 생겼다 해도 됩니다. 습하고 침침한 데를 좋아해서 장독 밑이나 요강 밑이나 그런 데를 좋아하지요. 시인은 그 발이 많은 벌레를 보며 이 자본주의로부터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투영합니다.

    자 ‘연꽃’에 주목해 봅시다. 여기서 말하는 ‘연꽃 속’은 아마도 돈이나 뭐나 그런 것들이 없는 세계, 그러니까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시인이 가고 싶은 깨끗하고 순진한 세계일 테지요. 아이구, 그런데도 결국 ‘돈벌레’는 연꽃 속에서 기어나와 다시 더러운 배설의 도구인 ‘요강’ 밑으로 숨어들었네요.

    ‘꽃잎 속에 숨어 있는 돈벌레’ 그놈은 아마 무능하지만 이 자본의 논리로부터 꼼짝도 못하고 사는 이 시대의 시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홍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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