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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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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 기사입력 : 2012-03-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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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 매화가 피어난다. 그런데도 누가 죽는다. 지상에는 꽃이 피고 하늘에는 구름이 핀다. 꽃도 피고 죽음도 핀다. 꽃도 지고 죽음도 진다. 안타까운 마음도 애달픈 마음도 다 소용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오늘을 살아가면 그뿐.

    라디오 틀어놓고 나물 다듬는 그대여. 시립화장장 화구 속에선 오늘도 수십 구의 시체가 태워지고 있다. 한쪽에선 찬송가를 부르고 또 한쪽에선 목탁을 두드리는 이 세상 아수라장에 올해도 산수유가 피고 동백이 핀다. 봄이 오고 봄이 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꾸역꾸역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나는 차마 울지를 못한다. 짐승처럼 퍼질러 앉아 울 언덕을 찾지 못한다.

    나물 캐러 갔다가 뒷동산에서 실컷 울고 왔다던 우리 어머니는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유홍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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