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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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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종과 종메- 허숙영(수필가)

  • 기사입력 : 2012-03-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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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뎅 뎅 뎅’

    환청인지 이명인지 범종소리가 아련히 들린다. 깊은 산중에서나 들려야 할 소리가 내 귓바퀴를 맴돌다니 무슨 조화일까. 세상일에 귀 기울이라는 소리인가,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소리인가.

    내 의식은 범종과 종메에 이른다. 범종과 종메는 어머니와 자식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한데 요즈음 그 불가분이라 여겼던 관계에도 쩍쩍 금 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서너 달 전에는 고등학생이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한 후 8개월이나 방치해 둔 채 먹고 자고 학교를 다닌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오자 원하는 만큼 조작한 것이 탄로나 맞을 것이 두려워 저지른 일이었다. 이 땅에 사는 어머니들의 일방적인 자식교육에 대한 사고를 바꿔 놓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의 머리로 범종을 쳐 깊은 울림을 전하는 종메의 운명이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리는 자신은 얼마나 아플 것이며 맞는 종은 또 어땠을 것인가. 혼자서 아이의 교육과 생계를 책임져 온 어머니에게 자식은 남편이자 자기 자신이었다. 아들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었기에 기꺼이 종메 역할을 자처했을 것이다. 범종이 아무리 웅장해도 종메의 희생 없이는 웅숭깊은 소리는 고사하고 본분마저 잊는 수가 있다. 아들이 법관이 되어 세상의 정의를 부르짖는 범종이 되기를 원했기에 더 열심히 두드렸을 것이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사람들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가슴을 울리는 영향력을 만고에 퍼뜨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게 치면 칠수록 더 높이 더 멀리 퍼져 나가리라 여겼지만 종도 종메도 그에 걸맞지 않았다.

    범종은 만들 때 강도와 소리를 결정하는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알맞게 들어가야 한다. 또한 2000도가 넘는 불에서도 견뎌내야만 제대로 된 소리를 낸다. 불순물이 섞이거나 주석을 많이 넣으면 깨져 버린다. 그의 어머니는 좀 더 강도 높고 훌륭한 소리를 내는 범종을 만들 생각에 재료들을 욕심껏 넣었던 것은 아닐까.

    종메도 그렇다. 눈비도 맞고 뜨거운 햇살에도 달궈져 가며 지난한 세월 속에 속으로 단단해지지 않으면 종메가 될 수 없다. 단단한 나무로 시련을 겪어온 종메와 적당한 재질과 인내의 과정이 있은 후의 범종이 만났을 때라야 그에 알맞은 소리와 음색을 갖출 것이다. 만인이 그 앞에서 합장하는 웅숭깊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둘 다 인내하고 기다렸어야 했다. 범종 없이는 종메도 한낱 통나무 조각에 불과하고 종메 없이는 미세한 바람결에도 소리 내는 풍경보다 못하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교육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자식의 인격 형성에 필요한 자양분이 돼 자연스레 몸에 배는 것이다.

    내게는 늘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 이른 잠에 들었다 깨면 식구들이 고구마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 때가 있었지만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며 일어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어렸지만 다른 식구들이 더 먹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것은 누가 강요를 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가 행하는 일은 범종의 여음처럼 가슴에 스며든다.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결핍을 낳는다. 공들인 만큼 되돌려 받으려 한다면 자식은 또 얼마나 숨이 찰 것인가. 자식의 행동이 나를 되비치는 거울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교육은 눈으로 보고 듣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울림이 아닐까. 진심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게 돼 있는….

    종메는 자신을 희생한 만큼 되돌려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맑은 소리에 답하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큰 울림을 전하려는 범종에 종메가 꼭 필요한 것처럼 위인들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뎅 뎅 뎅’

    내 안에서 울리는 범종소리에 아들의 건강과 성공을 위해 두 손을 모은다.

    허숙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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