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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게 있는 예술- 김소정(연극인·극단 고도 상임배우)

연극은 아우라 발산하며 우리 삶에 기쁨과 행복 전해줘

  • 기사입력 : 2012-03-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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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이나 드라마 관련 강의를 하다 보니 새 학기 학생들을 만나면 으레 소개를 하기 마련이다. 시작하면서 이 사람은 연극에 매료된 사람이라고 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질끈 묶어 올린 학생이 생기 있게 묻는다. 자신은 영화광으로 이래저래 연극을 잘 보지 않는데, 연극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알고 싶다 한다. 그래서 나는 연극인이지만 자주 관극을 하곤 하는데, 아우라(aura)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큰 체험이라 운을 뗀다.

    연극은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라이브하다. 주지하듯, 영화나 드라마는 ‘이미 만들어진 배우의 연기를 스크린을 통해’ 보는 것이고, 연극은 ‘지금 이 장소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연극은 가짜다. 하지만 영화는 가짜 제곱이다. 그러니 덜 가짜인 연극에 뭉클뭉클 감동을 더 받을 수밖에. 이 셈 끝에 학생들의 눈빛은 의구심을 발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단연 21세기 테크놀로지의 결정판이다. 어떤 현실이 이보다 생생하고 자극적일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관에서 ‘으아 죽인다!’고 수다를 떨다가도 홀을 빠져나오자마자 금방 잊어버리는 것 또한 영화다. 가슴 벌렁거리고 숨 가쁜 것을 느끼지만 그냥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맞으면 얼얼하고 아픈 것이 이치인 것처럼 대상이 워낙 감각적이니까 그만큼의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우라를 가진 예술품의 실감은 좀 더 다른 뜻을 지닌다. 요새 케이팝 열기가 뜨거운데, 공연을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급기야 기절하는 사태까지 이르는 것은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라이브 콘서트를 보고 엑스터시를 경험한 것이다. 사실 집에서 그들의 음반을 듣는다면 그 지경에 이를까.

    엑스터시는 라이브의 절친이다. 대상과 보는 자가 같은 시공간을 존재하면서 에너지를 교감할 수 있을 때에만 엑스터시는 생성된다. 엑스터시한 느낌은 기술복제 형식인 영화나 드라마, 음반 등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우라가 있을 때만이 생성되는 것이 엑스터시이다.

    물론 연극은 이 시대 부산물이 아니라 전통적인 형식이어서 자칫 고루하게 치부될 수도 있다. 가벼운 터치로, 손쉽게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참고 기다려야 하고 발품도 팔아야 한다. 한마디로 귀찮다. 그러나 극장에 가서 볼 수 있는 건 색다른 체험이고 그 느낌은 매우 새롭고 낯설다. 우습게도 대부분의 것들을 영상을 통해 보니까 오히려 무대에서 살아있는 배우를 본다는 자체가 도리어 신기하고 낯선 체험이 된다. 연극인인 내게 오히려 이 시대가 반갑다.

    극이 시작되면 배우가 뿜어내는 생생한 에너지로 하여금 관극은 무척 흥미로워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을 행동의 모방이라고 했다. 이에 많은 학자들이 주석을 달았는데, 에너지의 모방이라는 해석이 가장 눈길을 끈다. 연극은 에너지의 집합체다. 슬프고 기쁘고 고통스럽고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 말이다. 그 에너지는 아우라에서 나오고 엑스터시가 선물로 주어진다.

    성공적인 연극공연일 때 무대 위에 발산되는 아우라는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엑스터시까지는 아닐지라도 아우라에서 진한 희열을 느낄 수 있고 기쁨과 행복감은 순간 전염돼 억누를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관객들의 얼굴은 과히 자체 발광이다. 오늘 고단한 삶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열정적인 내일의 삶을 기대하고 희망하게 된다. 우리네 삶에 촉촉한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언제나 생각하건대, 연극은 참으로 남는 게 있는 예술이다.

    김소정(연극인·극단 고도 상임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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