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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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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따뜻한 밥 한 그릇- 옥영숙(시인)

  • 기사입력 : 2012-03-2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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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영업자에서 자유인이 된 지 3개월 남짓 되었다. 비빔밥집을 운영하던 바쁜 일상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고 동물은 살기 위해 먹는다고 말을 한다. 날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원한다. 더 좋고 더 멋지고 더 맛있는 것을 지향하기에 욕심이 많아진다. 동물은 살기 위해 먹기 때문에 배만 부르면 평화로워진다. 중요한 것은 진위 여부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어떤 해석을 적용하느냐의 문제이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주는 배부름은 생리적인 욕구보다 삶의 의지와 의욕을 지탱하는 생명력 그 자체이다.

    좋은 음식이란 푸성귀 하나에도 신선도를 선별하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재료마다 감춰진 성질을 찾아내 이해해야만 그 향기를 찾을 수 있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음식들이 있고 식당은 넘쳐난다. 사먹는 음식이란 너무나 일상적이고 습관적이라 많은 발자국들이 새로운 음식을 찾아다닌다.

    이른 아침 시장 골목은 닳고 닳은 모퉁이마다 바쁜 발자국들로 길을 만들어 간다.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좋은 먹거리를 사고판다. 사람들이 밟고 가는 분주한 발걸음마다 사연이 만들어지고 문화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은 먼 길 여행에서 돌아온 연인을 반기는 여인 같다. 지치고 피곤했던 긴 여정을 지우고 이제는 돌아와 쉬라며 따뜻하게 반기는 휴식이다. 정성과 사랑으로 준비된 밥상은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받아 주고, 그 위안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을 충족시켜준다.

    정성껏 내어놓은 밥이나 반찬에서 부주의한 실수로 머리카락이나 티끌이 나올 때도 있다. 그것은 시인이 시를 탈고했지만 띄어쓰기나 오자를 발견하는 것과 다름없이 느껴진다. 하는 일이 무엇이든 어디에 발 딛고 서 있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자 할 때 감동이 있는 것이다.

    밥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보인다. 조용한 몸짓에 적당하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집안도 정리정돈이 잘된 정갈한 모습일 거라 생각된다. 밥 한 그릇에 온기가 살아난다.

    그런가 하면 경상도 특유의 억센 말투에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여기요” “저기요” “이모” “아줌마”를 외쳐가면서 떠드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집은 산만하고 어수선할 것이라고 짐작된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대접할 줄 또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서비스를 요구하는 쪽이 갖춰야 할 예의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제대로 대접받고자 하는 사람은 권리 주장에 앞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한다면 얼마나 무례한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갖는 치유의 힘이란 유명한 호텔의 뷔페음식이나 호화로운 만찬보다 함께 나누는 밥 한 그릇의 힘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이 위로 받고, 배가 부른 그 포만감이 주는 평화를 잊지 못할 것이다. 서로 상대적으로 예의를 갖출 때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만족감을 안겨 준다.

    실내장식이 훌륭한 대형음식점이나 레스토랑보다 일반 식당에서는 함부로 대한다. 별다른 기술 없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지만 식당 일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함부로 대하는 손님들의 말과 행동은 그들이 나르는 음식이나 쟁반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그들을 괴롭힌다.

    반말과 무례한 말투로 반찬을 더 달라거나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이들,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가부장적인 태도로 무례를 범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내 돈 내고 밥 사 먹으니 서비스 받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례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밥상을 차려주는 이들의 수고에 고마워하는 손님의 눈빛과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집에 온 손님에게 밥상을 차리는 엄마와 누이의 마음이 되고 식당밥이 집밥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옥영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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