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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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애수- 강경구(문화유산답사가·굿모닝요양병원 병원장)

하얀 가운 속에 숨겨진 쓰라린 기억들이 인생 되돌아보게 해

  • 기사입력 : 2012-04-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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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낭만의 의과대학 생활, 고달프지만 희망의 나래를 펼치는 수련의 시절, 꿈 많은 고교생(이제는 의학대학원이 생겨 이공계 대학생도 포함되지만)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의사의 하얀 가운 속에는 어떤 고민도, 어떤 서글픔도 없어 보이지만 의사에게도 애수는 있다. 긴 세월 동안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잊지 못할 쓰라린 경험의 환자들이 있고 보람찬 경험도 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쓰라린 일은 오래, 심지어 평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쓰라린 지난날을 말씀드리면서 조금이라도 살아가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분홍 진달래가 덕동 고개를 화사하게 수놓는 희망의 봄이 한창 지나고 있는 1988년 봄에 18세의 공고 3년생이 응급실로 내원했다. 죽음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자살을 목적으로 농약 중에서 가장 맹독인 제초제의 일종인 그라목손을 먹고 왔다. 그라목손은 해독제가 있지만 조금만 먹어도 시간을 지체하면 생명을 잃게 된다. 목숨을 버리기로 한 이유는 자격증시험에 불합격했다는 너무나 단순한 것이었다. 생명이 꺼져 갈 때의 “엄마”하는 울음과 “좋은 데 가거라”하는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나를 허공만 바라보게 하였다.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부디 좋은 데 가거라.”

    싸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1990년 9월 초, 14세의 소년이 고열과 한기, 전신 통증으로 다른 병원을 거쳐 응급실로 왔다. 열은 40℃였고 몸 떨림과 호흡곤란을 동반하고 있었다. 처음 보기에도 패혈증의 진단이 가능한 환자였다. 그러나 최고의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등 패혈증에 관해 최대의 처치를 하였음에도 머나먼 나라로 갔다. 병의 발단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여름방학 때 바닷가에서 놀다가 우리나라 해변과 바닷속에서 제일 먼저 해결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최대의 공해인 굴 껍데기에 찔렸다는 것이었다.“아빠, 무섭다. 같이 있자”라고 죽음의 공포를 예감한 그 소년의 마지막 말이 16년이 지난 아직도 생생하다.

    당뇨병 때 혈당이 많이 올라갈 때는 본인이 증상을 느끼므로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러나 저혈당의 경우 더구나 혼자 생활하는 경우는 불행히도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다. 저혈당의 증세는 주로 식사를 적게 했다든지, 식사시간을 놓쳤다든지, 굶었을 때, 설사를 했을 때 등의 경우에 피부가 창백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손발이 저리고 식은땀이 나며 이 증상이 진행되면 의식 장애, 경련 등을 초래하는 초응급 상태가 된다.

    그래서 당뇨병의 경우 제 시간에 일정량의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기를 권하고 공복상태에서 에너지 소모가 많은 운동, 목욕, 등산 등을 절대 금해야 하고, 운동은 꼭 식사를 한 후 30분~1시간 후에 하도록 권하게 된다. 병원에 내원하시면 첫 번째로 강조하여 교육하는 것이 저혈당에 대한 교육과, 같이 자는 분이 있는지 여부, 저혈당 중세가 왔을 때 설탕물을 1~2컵이나 사탕 2~3개를 먹도록 반복하여 말하게 된다.

    1999년, 민족 최대 명절인 중추절을 하루 앞두고 모든 사람들이 고향에 간다는 기쁨에 넘쳐 흐를 때 영원히 잊지 못할 쓰라린 일이 일어났다. 낮에는 직장에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밤에는 학교에 나가는, 시골에서 와서 자취를 하는 여상 2년생이었다. 혼자 있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점심을 굶은 채로 고향에 가기 위해 목욕을 갔다는 것이다. 돌아와서 “힘이 빠진다”라는 말을 하고는 그대로 쓰러진 것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 그리하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주인집 아주머니가 병원에 왔다. 나를 더욱 서글프게 한 것은 한 생명이 저 세상으로 갔고 책임의 절반은 있다고 보이는 그 주인아주머니의 무심한 말, “사람이 죽었어요”였다.

    삶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그 가운데 내가 존재하는 것인가,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강경구(문화유산답사가·굿모닝요양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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