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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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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약인지미(掠人之美)-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점을 탈취해 오다

  • 기사입력 : 2012-05-0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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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헤비급 우승, 전국체전 태권도 헤비급 5연패,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헤비급 금메달, 세계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 동아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이학박사, 앙드레김 패션쇼 남성 메인모델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진 문대성씨는 단순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우상이었고, 대중의 스타였다.

    대부분의 금메달리스트들이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얼마간은 반짝하다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지는데, 문대성씨는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마침내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름이 나면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많게 마련이다. 선거기간 동안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두고 표절 시비가 일더니, 마침내 표절로 판명이 났다. 그는 동아대학교 교수직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새누리당을 탈당했지만,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논문표절이 판명되었는데도 왜 국회의원 당선자를 사퇴하지 않는 것일까? 자기 주변에 자기처럼 남의 논문 대충 짜깁기해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자기만 물고늘어지느냐 하는 억울한 심정에서 버티고 있을 것이다.

    1968년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도서관에 ‘한국박사록(韓國博士錄)’이라는 책이 있어 호기심에 한번 빌려 본 적이 있는데, 한 페이지에 한 명씩 한국박사들의 사진과 간단한 이력을 소개한 책이었는데, 책이 500페이지도 안 된 것 같았으니, 수록된 인원이 500명도 안 된 것 같았다. 그나마도 90% 이상이 의학박사였고, 문학박사나 이학박사(理學博士) 등은 아주 드물었다. 물론 한국에 있는 박사가 다 수록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는 박사 숫자가 아주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교수 중에도 박사인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박사 숫자가 1년에 1만명씩 배출된다고 한다. 박사논문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박사논문은 석사논문에 비하면 분량은 두서너 배 되지만, 쓰는 어려움은 열 배 스물 배 정도 된다.

    요즈음 박사학위는 자기 힘 하나도 들이지 않고 돈만 내면 얼마든지 표절시비에 걸리지 않고 받을 수 있는 길이 많다. 이런 엉터리 박사가 무더기로 쏟아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대학 교수들이 논문심사를 엉터리로 하기 때문이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김병준 국민대학교 교수가 교육부총리로 임명되었다가 청문회에서 논문표절 때문에 문제가 되어 교육부총리가 되지 못했다. 그 일을 계기로 교육부에서는 ‘연구윤리규정’을 만들어 각 대학에서 나오는 논문집 뒤에 싣게 하는 등 표절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문대성씨의 박사논문이 국민대에서 통과된 것은 바로 그 다음 해인 2007년이다. 대학교수들이 논문심사를 얼마나 엉터리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의 교수로서 그 분야에 좀 이름이 난 교수는 심한 경우 한 학기에 아홉 편의 박사논문 심사를 하는 경우를 보았다.

    대학교수라고 평생 책을 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논문 쓰기 쉽지 않은데, 다른 직업을 갖고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들은 정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자기 힘으로 써야 보람도 있고 떳떳하지 남의 손을 빌리거나 남의 것을 슬쩍 훔쳐서 학위를 받는다면, 자기 자신이 부끄러울 것이고,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이니, 그런 학위는 없는 것이 낫지 않을까?

    *掠 : 노략질할 략. *人 : 사람 인. *之 : 갈 지. …의. *美 : 아름다울 미.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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