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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통합과 ‘한 지붕 세 가족’- 허충호(논설위원)

일방적 행정통합은 지역 주민들간 ‘갈등의 불씨’로 남아

  • 기사입력 : 2012-05-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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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전에 소속 단체의 일원으로 남해를 방문했다. 남해에서도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는 삼동면 동천마을의 문화예술촌에 조성된 독일마을을 거쳐 원예예술촌을 둘러봤다.

    원예예술촌은 20명의 원예인들이 주축이 돼 조성한 곳이다. 21채의 집들이 이채롭다. 대지면적도 다르고 건평도 최대 5배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일정하지 않지만, 조화롭다. 그런 원예예술촌을 ‘하나의 목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개성을 살려 조화를 도모하는 공동체’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표현일까. 원예예술촌의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정상 인근에서 눈에 익은 이름 하나를 만난다. ‘박원숙 린궁’이라는 카페다. 탤런트 박원숙씨가 만든 집이란다. 그곳에 들어서면 옛 생각이 절로 나게 하는 사진이 있다. 필자 같은 세대가 즐겨 봤던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의 스틸 사진이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8년간 우리네 서민들의 얘기를 엮어 낸 드라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주인집과, 아내와 별거하고 아들과 함께 사는 만화가, ‘순돌’이라는 아이가 있는 바깥채 가족의 삶을 코믹하게 그린 드라마다(박원숙씨는 이 드라마에서 순돌 엄마 역을 맡았다).

    한 지붕 세 가족을 언급한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행정구역 통합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 통합의 시나리오가 한 지붕 세 가족의 드라마 설정과 유사해서다. 어디라고 적시하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잘사는 한 집과, 결코 풍요롭지 않을 것 같은 또 한 집, 잘살지는 않아도 가족 간 따뜻한 정이 흐르는 집이 한 지붕 세 가족의 설정이라면 최근 진행되는 여러 행정구역 통합 후보군들의 모습과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지붕 세 가족은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비록 한 지붕 아래 살기는 하지만 현실상황에 따라 언제든 구성원이 바뀔 수 있는 탄력적인 관계다. 혹여 바깥채에 사는 순돌네가 큰돈을 벌어 독립해 나갈 수도 있고 주인집과 불화가 생겨 세 들어 사는 두 집 모두 이사를 갈 수도 있는 일이다.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가 지난 17일까지 진주·사천 등 통합을 건의한 36개 통합대상지역에서 주민여론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통합 대상지역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찬성하는 지역과 반대하는 지역의 이해가 엇갈리는 만큼 자칫 일방적인 통합이 추진될 우려가 높다. 김두관 도지사가 최근 “(통합이)지방자치 정신과 주민의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는 차원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면서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한 지 17년이 좀 넘었는데 화학적 결합이 되지 않는 것은 도농복합통합이라는 차원에서 당시 내무부가 행정특례법에 의해 무리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우려를 저변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물론 행정조직개편이라는 것이 지역 간 이해를 미주알고주알 살펴보고, 모두의 이해를 충족시켜가며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민 의견은 원래 분분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해는 상충하게 돼 있다. 당국으로서는 참 고민스런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런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들의 가치관과 정서까지 ‘합리의 틀’속에 매몰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행정조직 개편은 정부 스스로 만든 인위적인 틀이다.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행정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내용물을 가리고 있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미지의 갈등요소가 분명 있다. 그런 부작용을 애써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통합 의지다. 특히 자율 의지다. 자율로 가장한 인위적 통합은 도지사가 언급한 대로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없다. 그저 도시경쟁력 강화라는 허울 좋은 화분에 갈등의 씨만 가득 뿌리는 꼴이다. 그런 통합이 무슨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가.

    허충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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